내가 본 스티브 맥퀸의 두번째 영화이다. 첫번째 영화는 헝거였다. 헝거를 잠깐 이야기하자면 IRA에 대한 이야기로 감옥에 투옥되어서 단식 투쟁을 하는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하여 그린 것이었다. 난 이 영화를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본 기억이 있다. 상당히 사회성이 짙은 영화였고 그들의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각주:1]


그에 반해서 이 영화는 다분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는 브랜든이라는 섹스중독자로 나온다.어떻게 보면 외관상으로는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거대 도시의 중심에 살고 있는 여피족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실은 섹스 중독자로서 자신의 집으로 콜걸을 불러서 섹스를 하고 웹캠으로 섹스 채팅을 하는 등의 일을 한다. 물론 원나잇스탠드도 감행하는 그런 인물이다.


이 인물과 캐리 멀리건이 씨씨라는 여동생으로 나오는 데 갑자기 오빠 집에 찾아와서 지내게 해달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갈등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두 사람이라고 보여지는 혹은 남과 녀를 대표하는 성으로 보여지는 이 두 인물이 하나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비슷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외모와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들 말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서 내적으로는 그러한 것에서 오는 공허함같은 것들이 이들에겐 가득하다. 그것이 브랜든에게는 섹스 중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드러나듯이 자극적인 장면들 - 나체, 정사장면들 -도 있지만 그것이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내가 가진 욕구를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죽으려고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좀 불편했던 이유는 마치 이 영화에서 브랜드과 내가 동일시되거나 혹은 씨씨랑 동일시되는 그런 느낌을 좀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두 사람이 실은 하나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상 이야기를 적다가 보니 결국은 둘은 같으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나온 하나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나온 것이 맞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는 살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두 사람이 느끼었던 그런 공허감/허무감을 내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이중성과 그런 것들을 우린 꼭 영화의 제목처럼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잠재된 욕구와 사회적 욕구가 충돌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과연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 어쩌면 감독은 그 반대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주:2]


[각주:3]



  1. 헝거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헝거로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본문으로]
  2. 여기서 갑자기 김두식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는 스스로의 욕망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볼 것을 권장했던 기억이 난다. [본문으로]
  3. 모든 이미지는 다음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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