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 10점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최근에 본 영화들에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의 감독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이다. 서점에 들렸다가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영화중에서 환상의 빛 이라는 영화의 원작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머랄까 아득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그런 선태을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을 그 소설을 읽고 나면 알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일본 소설이 주는 그런 묘한 느낌이 정서적으로 좀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위화의 소설들 - 허삼과매혈기-도 멀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단편에 가깝다고 생각된 그 소설 - 환상의 빛을 읽었던 그 느낌을 가지고 난 이 작가의 소설을  사서 읽었다.

한권에 쓰여진 이 소설은 갑자기 귀국하여 죽은 고모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고모가 결혼하여 살던 미국으로 가서 유산들을 정리하던 중에 과거의 한 사건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고 탐정을 고용하여 해당 일을 정리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읽다가 보면 마치 LA의 한 곳에 서서 내가 이야기들을 전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이야기인데 이전의 환상의 빛과 다르게 완전히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배경이 전혀 다른 곳이라서 그런거 같다.  이전의 배경은 마치 아주 오래전의 한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면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고 결말이 약간의 반전을 나타내고 있다.


그 반전은 사실 끝 부분에 전체적인 구도에서 약하게 정리가 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데 그것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이 정리되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그것을 끌고 갈때 약간 힘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약간은 예측가능한 범위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내가 소설가들에서 느끼는 것들은 그들이 가진 방대한 경험,지식과 사물에 대한 묘사들, 그리고 감정을 끌고 가면서 묘사하는 것들에서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것이 그들이 가지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물에 대한 치밀한 묘사, 그 상황에 대한 묘사 등이 어쩌면 그들이 가지는 첫번째 덕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읽으려면 먼저 환상의 빛을 꼭 먼저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 다음에 이 소설을 읽어서 같이 비교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환상의 빛 - 10점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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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네 번째 영화가 된다. 내 기억으로 첫번째로 본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그 영화에서는 뒤바뀐 자식을 보고 키운정으로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 감정의 기복이 커다랗게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그 사실들을 직시하게 만들어서 기존 다른 영화에서 볼 때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감독이라고 생각을 했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신파로 갈 뻔한 이야기들을 역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어서 이 영화역시 그런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영화를 봤다. 


줄거리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한명이 잡힌다. 그리고 살인 사건을 자백한다. 그런데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자기는 그냥 밖에서 살기보다는 교도소에서 편하게 살기 위하여 검사/변호사의 강요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얽힌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 이 와중에 홋카이도의 눈풍경을 역시나 좋았다. 


기존 히로카즈 영화보다는 당연하게도 감정의 폭이 큰 영화라는 생각이다. 기존 영화에서는 담담하게 일상을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보다는 진폭이 훨씬 큰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일단 소재 자체가 폭이 큰 이야기이고 제목에서도 알겠지만 살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이니 당연한 것인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게 세번째 살인인지 아니면 3개의 살인인지 혼동이 된다. 


도입부에 있는 자백한 살인자의 첫번째 살인, 그리고 그 살인자의 두번째 살인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데, 첫번째 홋카이도에서 있었던 살인에 대해서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이게 과연 진짜 그 사람이 살인을 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두번째 살인이야기도 정말 이 사람이 살인을 했을 까하는 의문은 달리게 된다. 그리고 진짜 살인자는 밖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게 된다. 약간의 혼동과 의심들이 열린 결말로 나오게 된다. 

물론 실제 영화속 결말은 완전히 오픈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지 누가 진짜 살인자일까 의심하는 생각은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2개의 살인과 감독이 정한 세번째 살인과의 연관성이다. 세번째 살인이라는 의미가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관객은 누가 살인자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만들었는 데 실제로 의도한 바는 세번째 살인은 인간이 과연 다른 인간을 심판하고 재단할 수 있는 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독이 그 부분을 세번째 살인으로 정하고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으로보이는 데, 실제로는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살인자로 상정되고 예상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만 결국은 남아서 세번째 살인에 대한 의도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두 개의 살인과 세번째 살인이 같이 밸런스를 맞추어서 이야기를 해야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되지 못하고 두번째 살인에 대부분의 것이 몰입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다. 


그렇게 몰입된 결과로 관객들은 이렇게 이야기들 하면서 나오게 되었다. 

" 누가 죽인거야? 누가 죽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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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활동했던 밴드였다. 이 밴드의 노래도 유명하지만 보컬과 기타/작곡을 맡고 있던 갤러거 형제로도 너무 유명하다. 실제로도 이 두 멤버가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다큐는 상영하는 극장이 소수이지만 록음악을 좋아하거나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길 원한다. 근래에 들어서 이 밴드만큼 임팩트가 있고 악동짓많이하던 밴드가 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이 밴드의 공연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2009년 인도 출장중에 이 밴드가 해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아주 오랜후에 국내 록 페스티벌에서 리암의 비디아이의 공연을 본적은 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이 밴드는 록 음악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밴드임에는 틀림없다. 이 밴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밴드의 Don't Look back in Anger 는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걸로도 이 밴드는 성공한 밴드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나마 이 다큐가 나와서 다시 둘이 합쳐지고 오아시스가 합쳐질 가능성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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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대부분 인터넷으로 책을 산다. 그러나, 불과 10년전쯤에는 인터넷으로 책을 다들 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 비율은 최근 5-6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늘어났다. 동네 서점이라고 할만한 서점들은 이제 중고생의 학습지나 문제집을 대부분 팔고 있다. 그마저도 내 생각엔 다시 한 5-6년이 지나면 인터넷 서점이 잠식할 것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오래전에 후배와 전자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다. 전자책 시장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사서 보는 이유는 책이 주는 촉감과 냄새, 줄을 긋고, 보관하고 꺼내보게되는 일련의 과정 즉 책에 대한 경험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을 하는 바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 종이가 없어질거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초반의 웹이 지금에 이르러 활성화되고 웹 브라우저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이메일을 통해서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신문이나 우편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것이 강조되는 것이 현실이다.


음악의 예를 들어보아도 사서 보관하고 듣던 것에서 이제는 스트리밍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네트워크라는 인프라가 음원을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발전을 이룬다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반면에 그것과 멀어지는 극단적인 계층도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소유에서 공유라는 개념으로 넘어가는 이 와중에 얼마전에 읽은 기사에서는 CD는 판매가 감소하고 있지만 LP는 오히려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양극단으로 나뉘어서 계층이 자신의 문화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부르디외가 이야기했다는  문화적 취향이 계급의 특질을 정의하게 되는 성향이 더 여기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읽은 책이 아니라 사회학을 전공한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이며 한병철의 책에서도 나온 이야기이다. 

당장 우리가 음악적인 취향에서도 알수 있듯이 특정계층은 클래식 혹은 재즈를 선호하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록/힙합을 듣는 계층을 멸시한다. - 이건 내가 직접 겪은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다시 서점이야기로 돌아와서 보면 음악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에 기반한 인터넷 서점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문제는 앞서 경험한 독서 경험이라는 부분이 작아지게 된다. 우리는 단지 책을 주문하는 것이지 서점에서 책을 보고 이 책의 디자인과 질감, 내용 등등을 따지고 사지 않게 된다. 그냥 서점이 게시하는 정보를 보고 책을 주문한다. 

물론 나도 인터넷 서점을 잘 이용한다. 그러나, 지금은 될 수 있으면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구매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방 소도시에서는 정말 서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찾아볼려고 해도 진짜 없으며 팔아도 문제지/참고서/학습지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점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에 방문한 남해의 봄날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점을 보고 "아, 동네 서점이 이러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은 이유는 아주 작은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 서점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다른 서점이 그냥 깔아놓은 것이 아니라 책방지기가 나름대로 선정한 책들을 서점에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진에 대해서 존 버거의 책들을 쭉 가져다 놓았고, 책방지기가 이 책을 가져다 놓은 이유들에 대해서 짧게 나마 이야기를 해준다. 왜 이런 책을 가져다 놓았고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고 다른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야기를 해주고 추천을 해준다. 일반적인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동네 서점이 갈 길을 잘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지기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나누고 그러다가 보면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서점은 통영의 전혁림 미술관 바로 앞에 있다. 그래서 전혁림 미술관을 보고 서점을 들리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서점은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는 데, 각 방은 통영의 이미지등을 잘 담고 있으니 하룻밤 잠을 청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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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날 집에서 조용히 IPTV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에도 좀 그렇고 해서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약간 지난 영화를 이렇게 보게 되니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좋은 면이 있다. 


일단 이 영화는 약간은 괴기스럽다. 이야기의 주제 자체가 괴기스럽다는 말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 솔로된 사람은 호텔(?)로 가서 솔로인 사람들과 45일 정도 지내면서 그 속에 같이 살 이성을 만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이 상황에서 개가 된 형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오는 그는 그냥 혼자 살기를 원해서 숲속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 커플이 되는 사람들은 보면 상대방에 나를 맞추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동물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인간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덕분이다 


그 덕분에 위선/위악을 다들 행한다. 사실 숲속으로 도망친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그안에서 커플로 살려는 사람들을 별종 혹은 처리의 대상으로 생각을 한다. 따라서, 내 생각엔 양쪽 다 상대방을 용인하기 보다는 받아들이지 못할 대상 혹은 거부의 대상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확하게 인식이 된 상태로 보인다. 

숲속에  도망쳐서 지내는 사람들끼리중에서 다시 이성에 호감을 느껴서 커플이 되고 이들이 결국엔 숲속에서 도망쳐서 도시로 가서 살려고 한다. 

그런데 도시의 인간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같이 살아가려는 상대방에 맞도록 핸디캡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도시 속의 삶에서의 기준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가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사회에서 거부를 당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욕망하고  그것을 닮아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하나의 개체로 존중받기 보다는 난 너와 같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살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와 같고 난 다르지 않으니 날 받아달라고 말이다. 


유전이론에서는 하나의 작은 돌연변이가 유전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이 자연에 적합하게 만들고 좀 더 큰 변화를 이끌어 내어서 진화를 하도록 만들게 만든다고 하였다. 작은 돌연변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발전하고 진화하고 나아지고 있는 존재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TAG 랍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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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다음 영화]

저격수는 같은 편을 보호하고 적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는다. 기본적으로는 숨어서 공격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죽음을 확인하게 된다. 저격수는 죽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는 거 같다. 대상을 선정하고 그 대상에 죽음을 안겨야 한다. 

일반적인 군인들은 일일이 죽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 

무차별적으로 죽음을 안겨주는 작업은 그 대상에 대한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저격수에게는 죽음의 대상이 반드시 적이라는 것이 상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위로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느낄수 있는 영화이긴 한데.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좀 아쉬운 점은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균형 즉, 개인과 전쟁이라는 것, 상업적이라는 것과 대중적이라는 것의 균형...약간은 과도하게 엇나가는 그런 맛이 좀 없다. 보고나면 약간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랜토리노도 그렇고..


그게 약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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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Daum 영화]



어제 밤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아주 오래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슴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은 주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고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러 왔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상당수 왔고 20대 30대 등등 다른 영화를 보러 갔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들어와서 이 영화를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네에 있는 영화관 하나를 이렇게 다양성 혹은 인디 계열의 영화를 계속 상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다큐인데 두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이 아주 오랜동안 서로 마주보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긴 기간동안 삶을 함께 해온 이야기 말이다. 이 다큐는 그 특성상 자극적인 장면이나 이야기가 없다. 이 두 분은 그냥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살아온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70년을 넘게 같이 살았어도 대부분을 서로 존대말믈 쓰고 서로에게 장난을 친다.

과연 이렇게 삶의 끝자리까지 가서 살아갈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아끼어도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희석시켜서 공중으로 날려보내는 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자극적인 이야기와 환경들에 대해서 집착한다. 마치 깊은 갈증과도 같다. 지금은 한모금 마시면 당장의 갈증이 해결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갈증은 다시금 더 깊어져서 더 많은 물을 마시고 싶어진다.


삶은 어쩌면 그 갈증을 적당히 느끼고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리고 상대방을 보면서 그것을 채워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몇몇 장면이 있는데, 자식을 열둘을 낳아서 여섯을 어렸을 때 떠나보내고 자신이 죽기전에 그들에게 줄 내복을 미리 장만하는 장면과 먼저 떠나보낼 배우자의 옷을 태우는 장면, 먼저 가서 기다리면 자신도 갈거라는 그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에 대해서는 정말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밀려들었다.


많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우리 각자의 삶이 하나의 영화이고 드라마같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어야 하고 멋지게 나올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는 서로 얽힌 이 삶이라는 영화에서 주연일수도 조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삶과 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얽히어서 인연이 되고 스스로에게 남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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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상처받은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다소 폭력적인 아이와 그를 돌보아야 하는 엄마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밀어낸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 밀어냄이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버림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쩔수없슴과 세상에 대한 버티기로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삶이라면 어이할 것인가? 먼 미래에도 세상은 그렇게 달라져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약하고 사회악으로 치부된 인간들은 세상에서 점점 더 격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나왔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른바 사회적 예방이라는 측면말이다.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보내야만 하는 그런일도 생긴다. 그런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 


갑자기 든 생각은 그냥 각자의 삶을 이제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음악들은 다양하게 정말 잘 나오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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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다음 영화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더 헌트 (2013)

The Hunt 
8.9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센, 수세 볼드, 아니카 베데르코프, 라세 포겔스트룀
정보
드라마 | 덴마크 | 115 분 | 2013-01-24
다운로드



영화를 본 지가 오래전 인 듯 한 느낌이고 그냥 어제 밤에 드러누워서 IPTV로 결제하고 본 영화다. 사실은 영화관에서 가서 볼려고 마음 먹었던 영화인데 이제서야 보게 된 셈이다. 배우인 매즈 미켈슨은 영어로 최근에 대형영화들(007/삼총사/미드 한니발 등등)에서도 볼 수 있다. 영어로 연기할 때는 이 배우의 발성은 저음에 왠지 차가운 느낌을 전해주고 있는 데 반하여 덴마크언어로 연기할 때는 그러한 느낌은 잘 없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한명의 별거중인 유치원 남성 교사가 친구의 어린 딸이자 유치원생인 애에게 잘 대해주었슴에도 그 아이의 순간적인 거짓말로 사회에서 거의 매장당하는 이야기다. 영문 포스터에서 보다시피 거짓은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는 말이 이 이야기를 아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것이 악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명의 어린이가 저지른 위악이 한명의 인간과 그 주변인들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행하지 않았고 진실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도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서 그 앙금이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 누군가는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사회에 대해서 커다란 분노를 가지게 만들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은 아주 보이지도 않고 확인도 되지 않는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가? 진실은 거짓과 달리 쉽게 퍼져나가지 않는 것인가? 진실은 어쩌면 영원히 묻혀버리는 것인가?



사족

이 감독 영화는 처음이었던 듯한데, 의외로 편안한 화면화 담담하게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과잉되지 않고 적절하게 절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 또한 그에 적절하게 연기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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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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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 8점
박평종 지음/달콤한책


기술의 발전에 최근 들어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이 아마도 가전제품들과 PC,스마트폰, 사진기일 것이다.


이 책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인데 크게 보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주목할만한 몇몇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으며 이후에 한국에서의 사진에 대한 역사, 마지막으로 몇 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사진가의 시선, 작가의 윤리

즐거운 환영: 한성필 <파사드>
‘빛그림’으로 환생한 오브제 식물: 구성수 <포토제닉 드로잉>
생명주권을 빼앗긴 야생인류의 생태학: 노순택 <좋은, 살인>
무기력한 국가의 가련한 초상: 강용석 <동두천 기념사진>에서 <한국전쟁 기념비>까지
기호의 경연(競演): 노상익 <캔서>
아름다움에 관한 어두운 진실: 김규식 <플라워즈>에서 <카니발>까지
‘우연’이 인도해준 세계의 입구: 최봉림 <우연의 배열>

2. 우리 사진의 풍경과 역사

1920~1930년대, 사진가들은 근대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문화 다원주의 시대의 한국 사진, 어디로 갈 것인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진의 지형도
분단문제, 특수한 사안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 변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향방
칠실파려안(漆室??眼)에 비친 다산 시대의 자연

3.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아마추어 사진가의 미래
사진으로 축소된 세계: 여행사진의 탐욕
B급 작가에 대한 생각
유명 사진전, 언제까지 수입만 할 것인가?
포토저널리즘의 미래
중간 이상의 예술
사진상(賞)과 작가 지원 제도의 문제점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사진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진과 초상권
사진저작권과 소유권
‘타인의 고통’과 사진 찍기의 괴로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들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진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지 찍는다는 것이 아닌 만든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그것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실적인 문제들,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틀이라는 것의 속성상 무한한 복제가 가능하고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진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다가가도록 만들고 욕망의 대상으로 보이도록 하게 만들었으며 이제 테크닉이 아닌 예술의 반열에 오른 이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간이상의 예술이라는 부분에서 부르디외의 중간예술이라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즉, 상층계급으로 가지 못한 중간층이 그들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사진을 중간예술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욕망을 충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중간층이 만들어낸 사진이 예술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하여 상층계급은 사진을  예술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구매하여 집에 걸어놓게 만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 얼마전 어느 프로에서 강남의 부유층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리라.


또한, 포토 저널리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진이 가지는 고발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찍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구호의 손길을 보낼 것인가 말이다.

이 부분에서도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그냥 단순히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비열하게 그것을 전시하고 윤리적으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니깐 찍히는 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된다. 책의 중반에도 나온 바와 같이 같은 피사체를 두고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며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문제인 것이다.


일련의 연작들을 오랜동안 해온 사진가에게 사회적으로 혹은 다수의 동종업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마도 그들이 그것에만 천착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것보다는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그들이 오랜동안 바닥에서 해온 것을 그들도 잘 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의 일부분의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 대상으로 꼽은 그 두 사람은 다분히 한국사회에서는 반학벌주의에 스스로 독학하여 사진을 익히고 죽을 때가지 그것 하나로 사진을 찍은 사람인데 어쩌면 부적절한 예를 들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진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고 사진으로 밥벌이하겠다 싶은 사람 혹은 사진가로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사람은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유명한 두 권의 다른 책도 더불어서 말이다.

- 수잔 손택 : 사진에 대하여

- 필립 퍼키스: 사진 강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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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tliberty.tistory.com BlogIcon navillera 2013.12.29 05: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의하기 어렵다는 시각 중의 1명은, 최민식 작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말하는것 같군요. 저도 약간 놀랐다는. 사실 나는 이 저자의 의견에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는. 왜냐하면 최작가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그래도 글이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었고, 수준이 괜찮은 편이어서 그럭저럭 잘 읽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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