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 10점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최근에 본 영화들에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의 감독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이다. 서점에 들렸다가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영화중에서 환상의 빛 이라는 영화의 원작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머랄까 아득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그런 선태을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을 그 소설을 읽고 나면 알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일본 소설이 주는 그런 묘한 느낌이 정서적으로 좀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위화의 소설들 - 허삼과매혈기-도 멀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단편에 가깝다고 생각된 그 소설 - 환상의 빛을 읽었던 그 느낌을 가지고 난 이 작가의 소설을  사서 읽었다.

한권에 쓰여진 이 소설은 갑자기 귀국하여 죽은 고모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고모가 결혼하여 살던 미국으로 가서 유산들을 정리하던 중에 과거의 한 사건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고 탐정을 고용하여 해당 일을 정리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읽다가 보면 마치 LA의 한 곳에 서서 내가 이야기들을 전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이야기인데 이전의 환상의 빛과 다르게 완전히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은 아마도 배경이 전혀 다른 곳이라서 그런거 같다.  이전의 배경은 마치 아주 오래전의 한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면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고 결말이 약간의 반전을 나타내고 있다.


그 반전은 사실 끝 부분에 전체적인 구도에서 약하게 정리가 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데 그것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이 정리되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그것을 끌고 갈때 약간 힘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약간은 예측가능한 범위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내가 소설가들에서 느끼는 것들은 그들이 가진 방대한 경험,지식과 사물에 대한 묘사들, 그리고 감정을 끌고 가면서 묘사하는 것들에서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것이 그들이 가지는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물에 대한 치밀한 묘사, 그 상황에 대한 묘사 등이 어쩌면 그들이 가지는 첫번째 덕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읽으려면 먼저 환상의 빛을 꼭 먼저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 다음에 이 소설을 읽어서 같이 비교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환상의 빛 - 10점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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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 8점
박평종 지음/달콤한책


기술의 발전에 최근 들어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이 아마도 가전제품들과 PC,스마트폰, 사진기일 것이다.


이 책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인데 크게 보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주목할만한 몇몇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으며 이후에 한국에서의 사진에 대한 역사, 마지막으로 몇 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사진가의 시선, 작가의 윤리

즐거운 환영: 한성필 <파사드>
‘빛그림’으로 환생한 오브제 식물: 구성수 <포토제닉 드로잉>
생명주권을 빼앗긴 야생인류의 생태학: 노순택 <좋은, 살인>
무기력한 국가의 가련한 초상: 강용석 <동두천 기념사진>에서 <한국전쟁 기념비>까지
기호의 경연(競演): 노상익 <캔서>
아름다움에 관한 어두운 진실: 김규식 <플라워즈>에서 <카니발>까지
‘우연’이 인도해준 세계의 입구: 최봉림 <우연의 배열>

2. 우리 사진의 풍경과 역사

1920~1930년대, 사진가들은 근대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문화 다원주의 시대의 한국 사진, 어디로 갈 것인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진의 지형도
분단문제, 특수한 사안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 변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향방
칠실파려안(漆室??眼)에 비친 다산 시대의 자연

3.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아마추어 사진가의 미래
사진으로 축소된 세계: 여행사진의 탐욕
B급 작가에 대한 생각
유명 사진전, 언제까지 수입만 할 것인가?
포토저널리즘의 미래
중간 이상의 예술
사진상(賞)과 작가 지원 제도의 문제점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사진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진과 초상권
사진저작권과 소유권
‘타인의 고통’과 사진 찍기의 괴로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들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진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지 찍는다는 것이 아닌 만든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그것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실적인 문제들,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틀이라는 것의 속성상 무한한 복제가 가능하고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진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다가가도록 만들고 욕망의 대상으로 보이도록 하게 만들었으며 이제 테크닉이 아닌 예술의 반열에 오른 이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간이상의 예술이라는 부분에서 부르디외의 중간예술이라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즉, 상층계급으로 가지 못한 중간층이 그들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사진을 중간예술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욕망을 충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중간층이 만들어낸 사진이 예술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하여 상층계급은 사진을  예술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구매하여 집에 걸어놓게 만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 얼마전 어느 프로에서 강남의 부유층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리라.


또한, 포토 저널리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진이 가지는 고발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찍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구호의 손길을 보낼 것인가 말이다.

이 부분에서도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그냥 단순히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비열하게 그것을 전시하고 윤리적으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니깐 찍히는 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된다. 책의 중반에도 나온 바와 같이 같은 피사체를 두고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며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문제인 것이다.


일련의 연작들을 오랜동안 해온 사진가에게 사회적으로 혹은 다수의 동종업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마도 그들이 그것에만 천착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것보다는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그들이 오랜동안 바닥에서 해온 것을 그들도 잘 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의 일부분의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 대상으로 꼽은 그 두 사람은 다분히 한국사회에서는 반학벌주의에 스스로 독학하여 사진을 익히고 죽을 때가지 그것 하나로 사진을 찍은 사람인데 어쩌면 부적절한 예를 들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진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고 사진으로 밥벌이하겠다 싶은 사람 혹은 사진가로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사람은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유명한 두 권의 다른 책도 더불어서 말이다.

- 수잔 손택 : 사진에 대하여

- 필립 퍼키스: 사진 강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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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tliberty.tistory.com BlogIcon navillera 2013.12.29 05: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의하기 어렵다는 시각 중의 1명은, 최민식 작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말하는것 같군요. 저도 약간 놀랐다는. 사실 나는 이 저자의 의견에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는. 왜냐하면 최작가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그래도 글이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었고, 수준이 괜찮은 편이어서 그럭저럭 잘 읽었던 기억이.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8점
김정후 지음/돌베개


이 책은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유럽에서 기존의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거나 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그 역할을 변경하는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영국 Tate Modern 박물관 1층 터빈실 - 출처:http://www.flickr.com/photos/pmorgan/2472654/ 저자: http://www.flickr.com/photos/pmorgan/


프롬나드 플랑테_멈춘 철로 위에 일상이 펼쳐지다 | 파리, 프랑스
트루먼 브루어리_예술가 마을로 변신한 양조장 | 런던, 영국
가소메터 시티_가스 저장고 안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다 | 빈, 오스트리아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센터_전쟁의 상흔 위에 탄생한 미디어아트의 메카 | 카를스루에, 독일
카타야노카 호텔_감옥이 변하여 호텔이 되다 | 헬싱키, 핀란드
카이샤 포럼_발전소 변신의 신화를 이어가다 | 마드리드, 스페인
와핑 프로젝트_수력발전소에서 유쾌한 상상력의 아지트로 | 런던, 영국
뒤스부르크 환경공원_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제철소 | 뒤스부르크, 독일
촐퍼라인_문 닫은 탄광에서 문화를 생산하다 | 에센, 독일
하펜시티_도시 안에 태어난 또 하나의 도시 | 함부르크, 독일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_친환경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가스공장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볼로냐 문화예술 지구_제빵공장은 미술관으로, 도축장은 문화예술센터로 | 볼로냐, 이탈리아
비미시 박물관_있는 그대로의 탄광촌으로 박물관을 만들다 | 더럼, 영국
취리히 웨스트_슬럼가 공장 지대,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다 | 취리히, 스위스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건설된 산업시설들이다. 발전소나 공장같은 것이 대부분인데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이런 건물들은 철거를 하고 그 위에 수익성높은 건물들을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이런 건물들은 구 도심에 근접해서 있어서 교통만 해결되면 아주 경제성있는 부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이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정책입안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대부분 낡은 이 건물들의 보존가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보존 건물로 지정하고 부수거나 인위적인 변경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유럽의 내재적인 전통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가장 현대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6.25이후에 거의 모든 유적지가 파괴되고 모든 것을 새로 건설해야 하는 상황을 지금까지 겪어왔다.이러한 상황은 건물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땅에 대한 애착만을 증폭시켜서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땅에 대한 강한 애착은 농사를 지어서 유지하여온 사회성에 기대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공간을 분할하고 안에서 살아가는 건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애착을 작게 가지게 되었다. - 그런데, 이게 6.25이후의 근대성에 기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시각도 사실 약간의 문제가 있어보이는 것이 유럽은 2차 대전이후에 거의 대부분 폐허가 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보수해서 사용한 것이 사실이다. - 영화 피아니스트같은 것이나 폭격후의 영국, 독일 사진들을 보면 이건 6.25전후의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의 의식과 유럽인이 오래된 건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이 약간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여간, 유렵의 관료들이 이 부분에서 우리와는 많은 시각차를 보이고 있으며 또 놀라운 것은 그들이 단순히 산업용도를 건설하면서 기능적인 측면만 고려를 해서 건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탄약공장이 미디어 아트 센터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건물이 이미 외관상으로는 단순히 탄약공장의 기능적인 측면만 고려해서 초기에 건설되지 않았다는 의미한다. 설계시점에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를 하고 그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반영하여 후세에도 그 건물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것은 우리가 현 시점에서 건축에 대해서 가지는 여러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높고 화려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다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유럽의 이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은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나 건축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100년후에도 남을 것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철거를 하면 편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재활용하고 재창조하기 위해서 고민을 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수력발전소의 설비나 기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일부 보수만 해서 공연장과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작업인 와핑프로젝트(http://www.thewappingproject.com)나 쇠락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성격인 함부르크의 하펜시티(http://www.hafencity.com)는 기존의 건물들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이러한 유럽의 여러가지 재생/재활용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데, 내용에 대해서 잘 정리가 되어져 있어서 만족스러운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 해당 프로젝트들의 사진이 글과 같이 보여주었으면 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사진의 크기상 그렇게 못하고 별도의 페이지에 넣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편집상 해당 사진과 글이 바로 연결되어서 보이지 않아서 약간 따로 놀은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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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tliberty.tistory.com BlogIcon navillera 2013.12.28 0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건물을 소비의 목적으로만 보는 반면에 서구는 건물을 생산을 위한 주체도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서구는 산업혁명 이후 지나친 문화적 우월감(!)의 발로로 인하여 자신들이 만든 무언가에 대해서는(그게 건물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든)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근대화의 과정을 대외침략과 식민지로 이어오는 굴종의 역사를 함께 겪으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자연스레 학습되어 오늘에 이르는것 같고요. 둘 다 극단적인 부분이 있어서 잘못된 시각이겠지요. 분명한 것은 서구의 '자신감'과 '유연한 사고'는 분명 배워야 할 점이 있는듯 보입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이렇게 즐비한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하지요, 사람과 건축이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빅데이터 혁명 - 6점
권대석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이 책은 빅데이터라고 불려지는 데이터들에 대한 개요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정형데이터들이 이제 네트워크에 상당히 많이 모여있게 되는 상황에서 이 데이터들을 활용해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병렬 컴퓨팅으로 학위를 받고 이 빅데이터의 본고장인 미국에 가서 이것을 활용해서 일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창업하여 클라우드 등의 컨설팅 서비스를 하고 있는 데, 이것이 아직은 국내에 생소하다. 일반 기업에서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것도 낮은 데, 빅데이터까지 진전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바마가 각종 데이터들을 모아서 데이터 분석 과학자들을 고용해서 선거에 승리한 것은 익히 알려진 것이다 - 참고로 EBS의 다큐프라임- 킹 메이커3부작의 3부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정확하 타켓을 설정하고 형세 분석을 해서 이긴 것이다. 데이터의 승리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공화당은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네가티브도 네트워크가 활성화됨에 따라서 수정이 빨리되거나 역풍을 맞는 것이다.


Chapter 1 빅데이터 세상이 온다
줄리아니는 왜 대통령이 되지 못했나?
오바마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
빅데이터, 정치가의 신념을 비웃다
빅데이터란 무엇인가
왜 하필 지금 빅데이터인가
손익을 좌우하는 빅데이터의 엄청난 가치
빅데이터는 클라우드, 슈퍼컴퓨팅, 소프트웨어 산업과 전문가의 결합이다

Chapter 2 삶을 혁신하고 내일을 예측하는 빅데이터 혁명
빅데이터, 클라우드, 슈퍼컴퓨팅을 활용한 의료혁명
내 평생 의료 기록을 내 PC에서 보고 싶다 - 클라우드와 의료
내 아이는 몇 살쯤 암에 걸릴까? - 슈퍼컴퓨팅과 의료
슈퍼컴퓨터, 병원 가운을 걸치다 - 빅데이터와 의료
빅데이터, 클라우드 의료 실현의 문제점
왕따와 교권 침해, 빅데이터로 해결하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로 입시 문제 해결


위의 목차를 보면 데이터들이 어떻게 활용될지 알 수 있다. 유전자 분석 데이터를 가지고 질병을 예측하고, 범죄를 예측하여 예방한다. 


미국은 공공 서비스 부분을 데이터들을 모아서 API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우편번호 API를 우체국서 제공해서 개별 기업들이 따로 그것을 만들지 않아도 같이 쓸 수 있거나 말이다. ( 이 부분은 현재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터는 집중하고 대신 활용도는 높일 방안을 우리는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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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8점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문학동네


이 책의 띠지에는 이 책이 총균쇠에에 필적하는 책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이 책을 비교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온당치 않아 보인다. 그 연구의 기간과 이야기들의 전개가 내가 보기엔 훨씬 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그것이 월등하다고 난 보여진다. 


이 책은 근대 문명에 대해서 제러드의 책이 생각할 시사점을 찾아 준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현대 문명에서의 전환점이 될만한 것에 대해서 시사점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여러가지 전환점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개인별로 판단하는 편차가 있을 수 있다. 


내 생각엔 20세기는 거의 전쟁의 시대였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우리가 6.25라고 부르고 세계인이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과 걸프전, 발칸반도의 전쟁등등이 우리 시대를 관통했다. 그 시대를 통해서 우리는 전쟁에서 파생된 여러가지 기술들을 맞이하고 역설적으로 사회발전을 이루어왔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3년여동안 전후 각종 물자 생산을 통하여 일본은 거의 폐허에서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까지 치루었다. 우리보다 수십년전에 도쿄올림픽이 그것이었고 그 시대에 그들의 문화를 수출하고 하다못해서 불교의 선이라는 말도 

ZEN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서구에 전파되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이 아주 오래전에 서구에 문호를 개개방하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경제 발전을 이룬다는 표현은 이러한 측면에서 정확하다고 보여질 수 있다. 


학문적으로도 (?) 보아도 각종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사회학/심리학이 발달하게 되고, 때로는 전쟁에 이기기 위한 각종 기술들이 나타난다. 우리가 아는 V 로켓은 독일군이 영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들었고, 암호학은 상대방 국가가 감청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다. 또한, 영국군은 독일군 U-Boat 를 공격하기 위해서 적정한 어뢰폭발 수심을 산정하기 위해서 경영학과와 산업공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배우는 경영과학 (Operations Research)를 만들었다. 원활한 병참관리를 지원하기 위하여 각종 네트워크에 대한 계산과 재고관리 기법등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주는 것이 어쩌면 책 제목에 이미 모두 포함되어져 있다. 인쇄술의 예를 들어도 그럴 것이다. 출판한다는 Publishing 은 Public 와 단어적인 유사성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초기 인쇄술이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성애 소설(요즘말로 야설?)이 책을 찍어내서 많이 사람들이 읽히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것이다. 인터넷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네트워크에서 책에서도 나오지만 얼리어탑터로서 아주 다양한 기술들을 선도적으로 시험하였다. 각종 비디오 인코딩 기술과 보안장비, 과부하에 대비한 기술적인 보완 등등은 전체 네트워크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 따라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물론 이런 인쇄술과 같이 다소 부정적인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고 긍정적인 방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더를 만든 기술이 전자렌지로 만들어지고 원자폭탄을 위한 밀폐기술이 프라이팬의 코팅기술인 테프론이 되고 - 이게 테팔이란다. -이것이 확장되어서 섬유에 고어텍스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은 합성물질 개발에 몰두하여 그 성과를 지금에도 받아서 쓰고 있다. 아그파, 바스프, 바이엘 등은 그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전쟁은 카메라기술을 발전시켜서 역설적으로 개인들이 소형카메라로 포르노를 찍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VHS같은 것으로 그것을 복제하여 양산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은 이마저도 숫자 0과 1로 변환한 하나의 데이터 덩어리로 만들어서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아주 대중적으로(?) 복제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DRM이라는 각종 복제 방지가 있지만 이마저도 점점 풀리는 추세이다.  


책을 읽으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좀 있다. 식품관리 제도인 HACCP과 레토르트 파우치가 나사의 우주인 프로그램에서 파생한 것이라든가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중에 하나가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진보를 끌어내지만 그것이 혹시 파괴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는 몬산토 등의 종자업체들이 GMO로 알려진 유전자 변형 식물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것은 질소비료를 만들어서 생산량증식에는 절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면에는 땅이 황페화되는 결과를 나았던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말이다.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의 누가 그것을 담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 이 부분은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같은 책을 보면 종자업체에서 저개발국가를 어떻게 착취하는 지 알수 있다. 


2010/08/24 - [Book/2010] - 탐욕의 시대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

저자
장 지글러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08-12-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풍요가 넘쳐나는 시대에 당신의 호주머니가 텅 비어가는 까닭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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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의 진보가 사회적 진보를 이끈다고 난 생각한다. 인터넷과 SNS가 정보의 평등을 가속화시키고 그 투명성을 확대시키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그늘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누릴 기회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우린 그 그늘에 있는 사람을 지향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0과 1이 아닌 사람을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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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8점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

이 책은 몇 명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잘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문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포드나 디즈니 같은 인물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실제로 기업을 하면서  했던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같은 것은 잘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만 치중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면을 보면 어두운 그늘이 분명히 있다. 


01 헨리 포드 현대를 창조한 포드주의, 그리고 포드주의가 창조한 현대의 시간
02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민족해방운동과 테러의 상징, AK-47 돌격소총
03 윌리엄 보잉 전쟁과 평화의 두 얼굴을 가진 하늘의 거인
04 샘 월튼 유통혁명을 일으키고 워킹푸어를 양산하다
05 모리타 아키오 소니 워크맨이 만든 개인주의 혁명
06 조지 갤럽 침묵하는 다수의 생각을 읽어 여론 제국을 건설하다
07 에드워드 버네이스 PR의 아버지 혹은 정보조작의 대부
08 로버트 우드러프 콜라를 통한 세계화, 코카콜로니제이션의 대부
09 새뮤얼 제머리 바나나 공화국의 녹색 교황 치키타와 과거사 청산
10 존 D. 록펠러 20세기 석유 문명을 만든 탐욕과 자선의 야누스
11 뒤퐁 가문 끊임없는 변신으로 2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듀폰
12 월트 디즈니 한 마리 생쥐로 시작한 글로벌 미디어 제국
13 콘래드 힐튼 세계인을 고객으로 호텔 네트워크를 건설한 호텔의 제왕
14 휴 헤프너 실크 파자마를 입은 성 혁명가 혹은 포르노 제국을 건설한 플레이보이
15 마사 스튜어트 행복한 가정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판매하는 살림의 여왕
16 프리츠 하버 녹색혁명에서 육식혁명으로 이어진 풍요를 발명한 비운의 과학자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이런 사람 혹은 기업가로 알고 있었던 그들의 다른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던 점이 아주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포드와 그의 아들은 노조문제로 갈등을 일으켰고, AK-47은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진 총기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 총기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는 점들은 새로운 시각을 나에게 제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꼈던 것은 저자가 아주 꼼꼼하다는 점이다. 이런 자료들을 조사해서 정리하고 다시 글을 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 100 페이지 정도의 논문쓰고 자료 조사하고 논지를 전개하는 데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난다. 그것도 나중에 보니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고 말이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보면 그 배경과 주변의 상황, 그 인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주변인물들까지 다 같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시대의 총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호텔 재벌인 힐튼만 이야기해서 전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호텔 재벌인 리츠의 이야기도 나오고 그 시대의 분위기나 경제적 상황등이 연관되어서 묘사되고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의 인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주변 배경까지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더더욱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뱀다리하나. 책제목에 부제를 하나 붙이면 어땠을 까는 생각도 들었다. -인물중심으로 라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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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영, 삼성을 공부하다 - 6점
하타무라 요타로 & 요시카와 료조 지음, 김대영 옮김/스펙트럼북스

2010년판이다. 그러니까 모바일 시대로 넘어가기 이전에 삼성전자 출신 일본인이 쓴 일본의 전자업체들과 삼성을 비교해서 삼성이 가진 강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삼성이 Fast Follwer 로서의 위치를 구가했다면 최소한 일본의 전자업체보다는 Leader의 위치에 서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90년대의 삼성과 2000년대의 삼성은 판이하다. 일단 90년대에는 지금처럼 많은 이익과 절대강자적인 기업이 아니었슴은 다들 알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90년대 초중반과 97년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가장 내부 혁신을 잘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결국은 구조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다들 거부했지만 IMF라는 시대적 상황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그런 작업들에 저자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제품 개발을 위한 설계정보의 전산화와 공유인 PDM을 활성화하고 사용하게끔 만든 것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사람과 제품, 프로세스를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전에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던 것이 외환위기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돈되는 사업으로의 집중과 조정이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후에도 일본기업을 따라하던 것에서 탈피해서 스스로의 시스템을 갖추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보론에 있던 이야기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삼성은 일본의 기술과 장비로 미국식 경영방식으로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핵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여간 기업은 사람(Person)이 제품(Product)을 공정(Process)을 통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책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세 가지 P를 이노베이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삼성을 보면 다시 모바일시장에서 Fast Follwer 로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피쳐폰에서 노키아에 뒤져서 2위였던 삼성과 3위였던 엘지는 노키아의 몰락으로 삼성의 순위가 상승하는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고 지금의 삼성은 다시 안드로이드 시장에서의 상징적이고 독점적인 위치에 올라왔지만 애플보다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모바일 스마트폰 시장에서 단일 업체로 강자인 애플의 뒤를 이어서 2위를 하고 있다. - 수익만 놓고 보면 애플은 지금 절대 강자이다. 얼마전의 특허소송에서 공개된 메일은 아이폰을 보고 좀 벤치마킹(?)하라고 한 것이 배심원에게 어필이 되어서 패소했다. 오늘 기사에는 미국 ITC는 애플이 삼성의 일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장 큰 시장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고 Leader 가 아닌 Follwer 가 된 것이다. 


다시 한번의 3P 이노베이션에 더해서 Software 이노베이션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하드웨어의 시대가 저물고 소프트웨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모바일로 전환하면서 알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의 OS를 만들 필요성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 까 한다. - 바다는 상당기간 흘렀지만 그 실체가 개발자들에게 명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문득 든 생각이 왜 팜을 인수한 HP가 내놓은  WebOS를 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본 오늘 기사 하나에서는 HP가 다시 스마폰 OS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모바일과 대체에너지 시장에서 다시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의 기업이 보다 바른 가치관으로 그들과 경쟁해서 이기게 되길 바란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소프팅파워를 키우는 것이 정말 중요한 상황이 되었다. 


국가도 그런 소프팅파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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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더십 - 8점
닐스 플레깅 지음, 박규호 옮김, 유필화 감수/흐름출판

저자는 독일에 있는 데, 기존의 미국식 경영방식 그러니까 근대 산업공학과 경영공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테일러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리더십이라는 것에 경도되어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한자문화권의 리더에 대한 존경과 무조건적인 신뢰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리더가 부도덕함에도 신뢰하는 경우도 있다. - 이 경우에는 리더십이 문제가 아니라 팔로우십이 아주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경우일 것이다. 기존의 방식-테일러주의, 포드주의-에 따르면 규모의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따른 계획을 세워서 예산수립후 행동하게 된다. 이런 것은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아주 유효한 방식이고 대다수의 회사들이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업무에 따라서 부서를 나누고 그것에 맞추어 중역이 있다. 또한, 수직적인 체계로 조직이 운영되고 의사결정은 중역들이 한다. 


위와 같은 방식에 대해서 이 책은 반기를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책에서 나오는 원칙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 


1. 직원들을 관리하지 마라 

2. 부서를 나누는 것은 헛된 일이다. 

3. 경영자가 아닌 리더로서 이끌어라

4. 고객을 지향하는 기업을 지향하라

5. 규모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6.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7. 장기적이고 개괄적인 목표를 세워라

8.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무기로 삼지마라.

9. 계획을 세우지 마라.

10. 결정은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1. 자본과 비용을 경영하지 마라.

12. 조직의 협력관계를 조직하지 마라.


대략 이쯤되면 기존의 방식을 갈아엎자는 것이 된다. 그런데 유사한 사례를 유럽의 기업들에서 제시를 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정보의 투명성과 장기적인 목표, 결정은 현장에서 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들만 잘 지켜져도 결국은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의 독점에 따른 신뢰의 붕괴, 단기적인 목표에 따른 성과주의와 제한된 인센티브로 경쟁 가속화, 현장을 모르는 주먹구구식 결정 등등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오른 단어는 몇 개의 단어로 축약되는 느낌이다. 


Think and Do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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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6점
공지영 지음/휴머니스트


먼저 개인적으로 공지영의 책을 그리 많이 읽은 편도 아니고 그렇게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돈 주고 산 목적은 하나다. 이 책을 사서 내가 알던 사실들을 확인하고 재차 확인하고 싶었고 이 책의 수익금이 쌍용차이후로 죽어나간 그들의 가족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1만원정도의 이 책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과거 와락에도 얼마의 돈을 보내고 그랬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개패듯이 맞고 있는 그들의 동영상에서 마음이 좀 아렸던 것도 있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트위터에서 리트윗되어서 내가 읽은 하나의 이야기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해고자된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서 인력시장에 나가서 전국을 돌면서 일을 하는 데, 집에는 아이 남매와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집에서 죽고 나서 남매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엄마를 깨우고 결국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침 사정이 있어서 이틀동안이나 아빠가 전화를 못받았다는 것이다. 결국은 아이들은 죽은 엄마와 이틀동안이나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어나간 사람들이 2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게 그러면서 통장에 있던 돈을 얼마간이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게 한번이긴 했지만 그러고 나서도 난 아주 너무나 이들에게 미안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책에 보면 나오지만 자산의 가치를 폭락시켜서 재무제표를 안좋게 만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이 와중에 구조조정대상이 아닌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고 싶으면 저들이 너희의 자리를 뺐을 수도 있으니 뺏기지 않으려면 몰아내라고 말이다. 자리는 한정적이니 살아남고 싶으면 시키는 데로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원래 그 자리를 조금 더 쪼개서 여러개를 만들 수도 있는 방법을 찾을 생각을 왜 못하는가? 

내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 나만 아니면 된다고 외치는 그것 말이다. 


진정 나만 아니면 내 옆의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갈 때, 손잡지 않고 밟아줄것인가? 내가 앉은 의자(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냥 못본척하면 그 손을 뿌리쳐가면서 살아갈 것인가? 그게 정말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그것인가?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그냥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고 조금은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냥 몰랐던 다른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인식하고 그들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책의 수익금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참고로 와락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thewarak.com/

꼭 후원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고민해볼 시간이라도 가지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여지가 있다면 그것도 좋을 거 같다.



PS. 트윗에서의 글 인용과 저작원에 대한 난타전도 알고 있다. 권력은 스스로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타인이 권력이라고 칭하면 권력이 된다.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낮추려는 순간 권력은 권력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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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길 하고자 한다. 


고통 - 10점
앙드레 드 리쇼 지음, 이재형 옮김/문학동네

이 책은 사랑이야기다. 근래에 읽은 소설중에서 모니카 마론의 슬픈짐승과 함께 가장 기억나는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장 그르니에가 알베르트 카뮈에게 권한 소설이라는 데, 왜 권했는 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한쪽은 불장난, 한쪽은 모든 것을 걸어버린 사랑. 그것이 몰고오는 고통. 모든 것을 던져버린 이야기가 이 안에 있다. 과연 모든 것을 던진 이에게 돌 던져서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가 현실있게 온다. 이런 것은 당연하게도 비극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1차 대전 이후의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날법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8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범우사


일단 서점에서 이 책값이 쌌고 그리고 제목에서 당겨서 읽었다. 철학자인 러셀이 자신은 왜 기독교도가 아니며 과학을 믿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다. 강연했던 것을 묶은 것인데 어렵다는 느낌도 있다 사실 한번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을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내공이 쌓인 후에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의 힘 - 6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요즘 화제가 되는 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힘이다. 강준만이 쓴 이책으 1/3정도만 안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전체적인 대선주자들의 판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저자가 왜 안철수를 지지하는 지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저자가 안철수를 지지하는 부분에서 가장 좀 크게 와 닿는 부분은 역시 안철수가 기성정치인들에게 빚진 부분이 없어서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 과연 그럴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선주자가 되면 그에게 줄서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린 사회지도자 하나를 시궁창으로 밀어넣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판단 유보다. 왜냐면 개론적인 입장만 표명한 상태이고 각론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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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godwithus BlogIcon 구성학 2012.11.19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저자 버트란트 럿셀의 글이 번역되어 서점에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92년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 큰 영광을 누렸다. 그가 자기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강연하던 때는 1929년 근간이다. 그때 한국은 일제 감점기에 있었고 세계는 전쟁의 포화로 인해 곳곳에 상처 투성이였다. 얼마나 존재를 누리고 산다고 서로를 향하여 포탄을 쏴대며 죽이고 죽는 살육의 현장에 서서 인간의 포악을 지켜본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식이 있었고 지성인이었으며, 사람이 무엇인가를 안다고 생각했으며 남의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성인으로서 존재하는 인간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사람을 낳고 인물을 낳는다고 할까?
    국민의 대표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등장한 안철수가 대통령의 자리에서서 국민을 이끌어 보겠다는 소명을 받아 일어서서 한발 한발 앞으로 아나가고 있다.
    국민이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것인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동인은 안철수도, 국민자신도, 제2의 인물도, 지성인들도 아닌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라는것이다.
    럿셀이 중세시대 태어났다면, 20세기의 지성인으로 성장했을까?
    그가 왜 그토록 기독교인들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가 어렸을때 자기 할아버지의 고통스런 인생을 보았고, 그 고통의 장본인들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강한 관념을 갖게한 사회가 럿셀을 비 크리스챤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지성인답게 자기의 감정을 감추고, 쉽고, 분명한 자세로 기독교에 관하여 집요한 설득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냈다. 달변가로 해박한 지식으로, 기독교인들이 대항할 수 없는 거리감을 갖게하였고, 100년이 다 가오는 오늘까지 그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한 신학자들이라 설교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독교안에 거하는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제각기 자기의 신학적 입장에서 자기의 주장을 가지고 있으나 1929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의 강단이나 혹은 온갖 강연에서 정치에서 혹은 사회나 문화를 장악한 럿셀 사상의 영향력은 기독교인이 결코 부술수 없는 장벽으로 교회와 대치하여 속수무책으로 기독교의 진영을 초토화 시켜 버린 것입니다.
    교회를 변호하던 지성인이 자기의 세력을 잃고 방황하고, 호랑이 앞에 꼬리내린 강아지 꼴을 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처참한 모습이다.
    결국 교회는 세상에서 세상을 이끌고 가는 중심에 서 있는 권위를 모두 잃고 한 구석으로 내몰려 자기만의 세력을 유지하느라 급급하다가 점차 그 세력을 상실한체 꼬리는 내려야 하는 처지에 이르고 만 것이다.
    럿셀의 목소리는 갈수록 더 커가고,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힘을 잃어가고 영광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이 계시고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럿셀의 목소리앞에 맥없이 스스러지고 있다.
    럿셀은 죽었으나 그의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화되어 아직도 사람을 움직이고,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되지 않고, 세속에 밀려 천덕꾸러기가 된 상태이다.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손상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그 인내 앞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한 없으신 사랑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대항을 아주 잘알고 계신다.,
    친히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잘 아시는 것이다.
    럿셀이 그토록 하나님을 대항하여 자기를 존재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정할수 없는 그 이유를 이미 아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천덕꾸러기처럼 취급하고 대적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남보다 더 오랜 시간을 허락하셔서 92년이라는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호하셨던 것이다.

    럿셀이 진정 사람의 본질을 알았을까?
    정말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한 자신의 지성에서 생성하는 수많은 지식들의 정체를 이해했을까?
    그의 생물체인 육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그 지식이 육체가 스스로 생성한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존재들로부터 받은 것인가? 그리고 그를 활동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 그 지식들은 럿셀과 함께 흙으로 사라져 버렸는가 아니면 남아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이런 형이상학적인 본질들 앞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물에 관한 모든 것들을 터부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 몽매한 자세부터 고치지 않으면 럿셀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럿셀을 이해한다는 말은 그의 지식을 긍정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본질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그가 부정한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신다.
    그는 지식의 하나님이시고 럿셀이 평생토록 자기의 육체로 사용하고 지식을 생성하여 수많은 젊은 이들의 지성에 지식으로 점령하여 사람을 사로잡은 그 지식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럿셀릉 지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그 지식을 사용한 댓가를 치르고 있다.
    생물체로서 하찮은 존재인 피조물이 만물을 존재하게하는 하나님의 지식을 92년동안 가졌고 그것을 휘둘러 자기를 존재하게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지식을 생성하여,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한 그 댓가로 영원히 자기의 의지를 상실한 감옥에 갇히게 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때 스스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루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생물체의 역할에 의해 지식을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사용하게 된다.
    자기의 존재에 따라 적당한 옷을 입듯이 자기에게 맞는 지식을 기호에 따라 자기 육체에 적용하여 자기의 삶의 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넓혀 바다와 같이 무한대의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기의 한계안에서 자기를 스스로 안착시켜 존재로서 시간을 허비한 낭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모든 세계의 동력은 바로 사람에게 주어진 지식에 있다.
    럿셀에게는 사람들이 캐내지 못한 수많은 지식들을 수고스럽게 고뇌하여 자기의 몸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려는 강력한 욕구가 그를 깨웠고, 그 지식의 무한하고 증명할 수 없는 끝없는 세계에서 내려올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그는 앞으로 달려 나아가기만 했지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존재에 관한 지식으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수천km에 달하는 바다속과 넓이에 맞추어 그물을 만들어 고기를 들어 올리려는 욕심을 가졌으나 정작 자기가 왜 그 일을 하는 존재인지 고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럿셀은 세상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희생한다고 했으나 자기의 존재가 차지하는 위치를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사람을 몰랐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고, 하나님과 평행선을 달리는 럿셀의 대적에 대해 답하는 신학자와 설교자가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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