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8점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

이 책은 몇 명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잘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문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포드나 디즈니 같은 인물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실제로 기업을 하면서  했던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같은 것은 잘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만 치중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면을 보면 어두운 그늘이 분명히 있다. 


01 헨리 포드 현대를 창조한 포드주의, 그리고 포드주의가 창조한 현대의 시간
02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민족해방운동과 테러의 상징, AK-47 돌격소총
03 윌리엄 보잉 전쟁과 평화의 두 얼굴을 가진 하늘의 거인
04 샘 월튼 유통혁명을 일으키고 워킹푸어를 양산하다
05 모리타 아키오 소니 워크맨이 만든 개인주의 혁명
06 조지 갤럽 침묵하는 다수의 생각을 읽어 여론 제국을 건설하다
07 에드워드 버네이스 PR의 아버지 혹은 정보조작의 대부
08 로버트 우드러프 콜라를 통한 세계화, 코카콜로니제이션의 대부
09 새뮤얼 제머리 바나나 공화국의 녹색 교황 치키타와 과거사 청산
10 존 D. 록펠러 20세기 석유 문명을 만든 탐욕과 자선의 야누스
11 뒤퐁 가문 끊임없는 변신으로 2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듀폰
12 월트 디즈니 한 마리 생쥐로 시작한 글로벌 미디어 제국
13 콘래드 힐튼 세계인을 고객으로 호텔 네트워크를 건설한 호텔의 제왕
14 휴 헤프너 실크 파자마를 입은 성 혁명가 혹은 포르노 제국을 건설한 플레이보이
15 마사 스튜어트 행복한 가정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판매하는 살림의 여왕
16 프리츠 하버 녹색혁명에서 육식혁명으로 이어진 풍요를 발명한 비운의 과학자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이런 사람 혹은 기업가로 알고 있었던 그들의 다른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던 점이 아주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포드와 그의 아들은 노조문제로 갈등을 일으켰고, AK-47은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진 총기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 총기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는 점들은 새로운 시각을 나에게 제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꼈던 것은 저자가 아주 꼼꼼하다는 점이다. 이런 자료들을 조사해서 정리하고 다시 글을 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인지 잘 알고 있다. - 100 페이지 정도의 논문쓰고 자료 조사하고 논지를 전개하는 데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난다. 그것도 나중에 보니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고 말이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보면 그 배경과 주변의 상황, 그 인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주변인물들까지 다 같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시대의 총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호텔 재벌인 힐튼만 이야기해서 전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호텔 재벌인 리츠의 이야기도 나오고 그 시대의 분위기나 경제적 상황등이 연관되어서 묘사되고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의 인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주변 배경까지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더더욱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뱀다리하나. 책제목에 부제를 하나 붙이면 어땠을 까는 생각도 들었다. -인물중심으로 라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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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영, 삼성을 공부하다 - 6점
하타무라 요타로 & 요시카와 료조 지음, 김대영 옮김/스펙트럼북스

2010년판이다. 그러니까 모바일 시대로 넘어가기 이전에 삼성전자 출신 일본인이 쓴 일본의 전자업체들과 삼성을 비교해서 삼성이 가진 강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삼성이 Fast Follwer 로서의 위치를 구가했다면 최소한 일본의 전자업체보다는 Leader의 위치에 서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90년대의 삼성과 2000년대의 삼성은 판이하다. 일단 90년대에는 지금처럼 많은 이익과 절대강자적인 기업이 아니었슴은 다들 알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90년대 초중반과 97년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가장 내부 혁신을 잘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결국은 구조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다들 거부했지만 IMF라는 시대적 상황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그런 작업들에 저자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제품 개발을 위한 설계정보의 전산화와 공유인 PDM을 활성화하고 사용하게끔 만든 것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사람과 제품, 프로세스를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전에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던 것이 외환위기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돈되는 사업으로의 집중과 조정이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후에도 일본기업을 따라하던 것에서 탈피해서 스스로의 시스템을 갖추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보론에 있던 이야기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삼성은 일본의 기술과 장비로 미국식 경영방식으로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핵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여간 기업은 사람(Person)이 제품(Product)을 공정(Process)을 통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책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세 가지 P를 이노베이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삼성을 보면 다시 모바일시장에서 Fast Follwer 로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피쳐폰에서 노키아에 뒤져서 2위였던 삼성과 3위였던 엘지는 노키아의 몰락으로 삼성의 순위가 상승하는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고 지금의 삼성은 다시 안드로이드 시장에서의 상징적이고 독점적인 위치에 올라왔지만 애플보다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모바일 스마트폰 시장에서 단일 업체로 강자인 애플의 뒤를 이어서 2위를 하고 있다. - 수익만 놓고 보면 애플은 지금 절대 강자이다. 얼마전의 특허소송에서 공개된 메일은 아이폰을 보고 좀 벤치마킹(?)하라고 한 것이 배심원에게 어필이 되어서 패소했다. 오늘 기사에는 미국 ITC는 애플이 삼성의 일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장 큰 시장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고 Leader 가 아닌 Follwer 가 된 것이다. 


다시 한번의 3P 이노베이션에 더해서 Software 이노베이션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하드웨어의 시대가 저물고 소프트웨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모바일로 전환하면서 알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의 OS를 만들 필요성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 까 한다. - 바다는 상당기간 흘렀지만 그 실체가 개발자들에게 명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문득 든 생각이 왜 팜을 인수한 HP가 내놓은  WebOS를 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본 오늘 기사 하나에서는 HP가 다시 스마폰 OS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모바일과 대체에너지 시장에서 다시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의 기업이 보다 바른 가치관으로 그들과 경쟁해서 이기게 되길 바란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소프팅파워를 키우는 것이 정말 중요한 상황이 되었다. 


국가도 그런 소프팅파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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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더십 - 8점
닐스 플레깅 지음, 박규호 옮김, 유필화 감수/흐름출판

저자는 독일에 있는 데, 기존의 미국식 경영방식 그러니까 근대 산업공학과 경영공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테일러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리더십이라는 것에 경도되어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한자문화권의 리더에 대한 존경과 무조건적인 신뢰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리더가 부도덕함에도 신뢰하는 경우도 있다. - 이 경우에는 리더십이 문제가 아니라 팔로우십이 아주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경우일 것이다. 기존의 방식-테일러주의, 포드주의-에 따르면 규모의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따른 계획을 세워서 예산수립후 행동하게 된다. 이런 것은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아주 유효한 방식이고 대다수의 회사들이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업무에 따라서 부서를 나누고 그것에 맞추어 중역이 있다. 또한, 수직적인 체계로 조직이 운영되고 의사결정은 중역들이 한다. 


위와 같은 방식에 대해서 이 책은 반기를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책에서 나오는 원칙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 


1. 직원들을 관리하지 마라 

2. 부서를 나누는 것은 헛된 일이다. 

3. 경영자가 아닌 리더로서 이끌어라

4. 고객을 지향하는 기업을 지향하라

5. 규모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6.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7. 장기적이고 개괄적인 목표를 세워라

8.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무기로 삼지마라.

9. 계획을 세우지 마라.

10. 결정은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1. 자본과 비용을 경영하지 마라.

12. 조직의 협력관계를 조직하지 마라.


대략 이쯤되면 기존의 방식을 갈아엎자는 것이 된다. 그런데 유사한 사례를 유럽의 기업들에서 제시를 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정보의 투명성과 장기적인 목표, 결정은 현장에서 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들만 잘 지켜져도 결국은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의 독점에 따른 신뢰의 붕괴, 단기적인 목표에 따른 성과주의와 제한된 인센티브로 경쟁 가속화, 현장을 모르는 주먹구구식 결정 등등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오른 단어는 몇 개의 단어로 축약되는 느낌이다. 


Think and Do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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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6점
공지영 지음/휴머니스트


먼저 개인적으로 공지영의 책을 그리 많이 읽은 편도 아니고 그렇게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돈 주고 산 목적은 하나다. 이 책을 사서 내가 알던 사실들을 확인하고 재차 확인하고 싶었고 이 책의 수익금이 쌍용차이후로 죽어나간 그들의 가족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1만원정도의 이 책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과거 와락에도 얼마의 돈을 보내고 그랬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개패듯이 맞고 있는 그들의 동영상에서 마음이 좀 아렸던 것도 있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트위터에서 리트윗되어서 내가 읽은 하나의 이야기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해고자된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서 인력시장에 나가서 전국을 돌면서 일을 하는 데, 집에는 아이 남매와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집에서 죽고 나서 남매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엄마를 깨우고 결국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침 사정이 있어서 이틀동안이나 아빠가 전화를 못받았다는 것이다. 결국은 아이들은 죽은 엄마와 이틀동안이나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어나간 사람들이 2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게 그러면서 통장에 있던 돈을 얼마간이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게 한번이긴 했지만 그러고 나서도 난 아주 너무나 이들에게 미안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책에 보면 나오지만 자산의 가치를 폭락시켜서 재무제표를 안좋게 만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이 와중에 구조조정대상이 아닌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고 싶으면 저들이 너희의 자리를 뺐을 수도 있으니 뺏기지 않으려면 몰아내라고 말이다. 자리는 한정적이니 살아남고 싶으면 시키는 데로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원래 그 자리를 조금 더 쪼개서 여러개를 만들 수도 있는 방법을 찾을 생각을 왜 못하는가? 

내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 나만 아니면 된다고 외치는 그것 말이다. 


진정 나만 아니면 내 옆의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갈 때, 손잡지 않고 밟아줄것인가? 내가 앉은 의자(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냥 못본척하면 그 손을 뿌리쳐가면서 살아갈 것인가? 그게 정말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그것인가?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그냥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고 조금은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냥 몰랐던 다른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인식하고 그들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책의 수익금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참고로 와락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thewarak.com/

꼭 후원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고민해볼 시간이라도 가지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여지가 있다면 그것도 좋을 거 같다.



PS. 트윗에서의 글 인용과 저작원에 대한 난타전도 알고 있다. 권력은 스스로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타인이 권력이라고 칭하면 권력이 된다.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낮추려는 순간 권력은 권력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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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길 하고자 한다. 


고통 - 10점
앙드레 드 리쇼 지음, 이재형 옮김/문학동네

이 책은 사랑이야기다. 근래에 읽은 소설중에서 모니카 마론의 슬픈짐승과 함께 가장 기억나는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장 그르니에가 알베르트 카뮈에게 권한 소설이라는 데, 왜 권했는 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한쪽은 불장난, 한쪽은 모든 것을 걸어버린 사랑. 그것이 몰고오는 고통. 모든 것을 던져버린 이야기가 이 안에 있다. 과연 모든 것을 던진 이에게 돌 던져서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가 현실있게 온다. 이런 것은 당연하게도 비극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1차 대전 이후의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날법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8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범우사


일단 서점에서 이 책값이 쌌고 그리고 제목에서 당겨서 읽었다. 철학자인 러셀이 자신은 왜 기독교도가 아니며 과학을 믿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다. 강연했던 것을 묶은 것인데 어렵다는 느낌도 있다 사실 한번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을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내공이 쌓인 후에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의 힘 - 6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요즘 화제가 되는 안철수의 생각이 아닌 힘이다. 강준만이 쓴 이책으 1/3정도만 안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전체적인 대선주자들의 판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저자가 왜 안철수를 지지하는 지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저자가 안철수를 지지하는 부분에서 가장 좀 크게 와 닿는 부분은 역시 안철수가 기성정치인들에게 빚진 부분이 없어서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 과연 그럴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선주자가 되면 그에게 줄서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린 사회지도자 하나를 시궁창으로 밀어넣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판단 유보다. 왜냐면 개론적인 입장만 표명한 상태이고 각론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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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godwithus BlogIcon 구성학 2012.11.19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저자 버트란트 럿셀의 글이 번역되어 서점에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92년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 큰 영광을 누렸다. 그가 자기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강연하던 때는 1929년 근간이다. 그때 한국은 일제 감점기에 있었고 세계는 전쟁의 포화로 인해 곳곳에 상처 투성이였다. 얼마나 존재를 누리고 산다고 서로를 향하여 포탄을 쏴대며 죽이고 죽는 살육의 현장에 서서 인간의 포악을 지켜본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식이 있었고 지성인이었으며, 사람이 무엇인가를 안다고 생각했으며 남의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성인으로서 존재하는 인간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사람을 낳고 인물을 낳는다고 할까?
    국민의 대표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등장한 안철수가 대통령의 자리에서서 국민을 이끌어 보겠다는 소명을 받아 일어서서 한발 한발 앞으로 아나가고 있다.
    국민이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것인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동인은 안철수도, 국민자신도, 제2의 인물도, 지성인들도 아닌 바로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라는것이다.
    럿셀이 중세시대 태어났다면, 20세기의 지성인으로 성장했을까?
    그가 왜 그토록 기독교인들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가 어렸을때 자기 할아버지의 고통스런 인생을 보았고, 그 고통의 장본인들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강한 관념을 갖게한 사회가 럿셀을 비 크리스챤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지성인답게 자기의 감정을 감추고, 쉽고, 분명한 자세로 기독교에 관하여 집요한 설득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냈다. 달변가로 해박한 지식으로, 기독교인들이 대항할 수 없는 거리감을 갖게하였고, 100년이 다 가오는 오늘까지 그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한 신학자들이라 설교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독교안에 거하는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제각기 자기의 신학적 입장에서 자기의 주장을 가지고 있으나 1929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의 강단이나 혹은 온갖 강연에서 정치에서 혹은 사회나 문화를 장악한 럿셀 사상의 영향력은 기독교인이 결코 부술수 없는 장벽으로 교회와 대치하여 속수무책으로 기독교의 진영을 초토화 시켜 버린 것입니다.
    교회를 변호하던 지성인이 자기의 세력을 잃고 방황하고, 호랑이 앞에 꼬리내린 강아지 꼴을 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처참한 모습이다.
    결국 교회는 세상에서 세상을 이끌고 가는 중심에 서 있는 권위를 모두 잃고 한 구석으로 내몰려 자기만의 세력을 유지하느라 급급하다가 점차 그 세력을 상실한체 꼬리는 내려야 하는 처지에 이르고 만 것이다.
    럿셀의 목소리는 갈수록 더 커가고,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힘을 잃어가고 영광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이 계시고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럿셀의 목소리앞에 맥없이 스스러지고 있다.
    럿셀은 죽었으나 그의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화되어 아직도 사람을 움직이고,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되지 않고, 세속에 밀려 천덕꾸러기가 된 상태이다.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손상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그 인내 앞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의 한 없으신 사랑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대항을 아주 잘알고 계신다.,
    친히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잘 아시는 것이다.
    럿셀이 그토록 하나님을 대항하여 자기를 존재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인정할수 없는 그 이유를 이미 아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천덕꾸러기처럼 취급하고 대적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남보다 더 오랜 시간을 허락하셔서 92년이라는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호하셨던 것이다.

    럿셀이 진정 사람의 본질을 알았을까?
    정말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한 자신의 지성에서 생성하는 수많은 지식들의 정체를 이해했을까?
    그의 생물체인 육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그 지식이 육체가 스스로 생성한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존재들로부터 받은 것인가? 그리고 그를 활동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 그 지식들은 럿셀과 함께 흙으로 사라져 버렸는가 아니면 남아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이런 형이상학적인 본질들 앞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물에 관한 모든 것들을 터부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 몽매한 자세부터 고치지 않으면 럿셀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럿셀을 이해한다는 말은 그의 지식을 긍정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본질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그가 부정한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신다.
    그는 지식의 하나님이시고 럿셀이 평생토록 자기의 육체로 사용하고 지식을 생성하여 수많은 젊은 이들의 지성에 지식으로 점령하여 사람을 사로잡은 그 지식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럿셀릉 지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그 지식을 사용한 댓가를 치르고 있다.
    생물체로서 하찮은 존재인 피조물이 만물을 존재하게하는 하나님의 지식을 92년동안 가졌고 그것을 휘둘러 자기를 존재하게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지식을 생성하여,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한 그 댓가로 영원히 자기의 의지를 상실한 감옥에 갇히게 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때 스스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루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생물체의 역할에 의해 지식을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사용하게 된다.
    자기의 존재에 따라 적당한 옷을 입듯이 자기에게 맞는 지식을 기호에 따라 자기 육체에 적용하여 자기의 삶의 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넓혀 바다와 같이 무한대의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기의 한계안에서 자기를 스스로 안착시켜 존재로서 시간을 허비한 낭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모든 세계의 동력은 바로 사람에게 주어진 지식에 있다.
    럿셀에게는 사람들이 캐내지 못한 수많은 지식들을 수고스럽게 고뇌하여 자기의 몸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려는 강력한 욕구가 그를 깨웠고, 그 지식의 무한하고 증명할 수 없는 끝없는 세계에서 내려올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그는 앞으로 달려 나아가기만 했지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존재에 관한 지식으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수천km에 달하는 바다속과 넓이에 맞추어 그물을 만들어 고기를 들어 올리려는 욕심을 가졌으나 정작 자기가 왜 그 일을 하는 존재인지 고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럿셀은 세상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희생한다고 했으나 자기의 존재가 차지하는 위치를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사람을 몰랐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고, 하나님과 평행선을 달리는 럿셀의 대적에 대해 답하는 신학자와 설교자가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깝


미스터 모노레일 - 8점
김중혁 지음/문학동네

처음 읽은 김중혁의 장편소설인데, 몰입도도 좋고 이야기의 전개도 좋다. 그리고 소재도 특이하고 재밌다. 그것으로 이 소설은 아주 좋다. 


김중혁의 네번째 소설이자 두번째 장편소설. '독학'으로 터득한 자신만의 감각으로 이 시대와 함께 노는 작가, 김중혁이 또 한번 게임판을 벌였다. <미스터 모노레일>은 '놀이'하는 소설가 김중혁의 일체형 맞춤소설이다. 사람 김중혁과 소설가 김중혁, 게임과 현실, 그리고 작품이 꼭 하나를 이루는 <미스터 모노레일>, 이번엔 '주사위놀이'이다. 

두 개의 주사위를 던진다. 공중에서 무수히 방향을 달리하던 주사위는 땅에 떨어지는 순간 각각 하나씩의 숫자를 내보이고, 그 숫자만큼 말은 이동한다. 그곳은 함정이나 구덩이일 수도, 또 생각지 못한 행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시 주사위는 던져지고, 말은 또다시 이동한다. 

어느 날 아침, 잠을 푹 자고 일어난 모노는 눈을 뜨자마자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곧바로 게임의 룰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노는 지도를 펼친 다음 유럽의 모든 도시 위에다 가상의 모노레일을 하루 만에 건설했고, 곧바로 혼자만의 모험을 떠났다. 블루, 화이트, 레드, 블랙, 핑크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헬로, 모노레일' 게임의 시작이다. 

김중혁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게, <미스터 모노레일>의 주인공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대한민국 상위 %가 아니다. 한없이 머뭇거리고 수줍은 소심한 일반인들, 하지만 각자가 모두 제 삶의 주인공인 우리들이다. 

보드게임 '헬로, 모노레일'을 만든 모노와 그의 '친구들'은 예기치 않게,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어떤 사건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자신이 만든 게임의 말이 된 듯, 누군가 던져놓은 주사위가 보여주는 숫자만큼 사건에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고, 함정을 만나고, 해결하고, 그리고 종착역을 향해 다가간다.



윗 글은 알라딘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보드게임을 모노와 그의 친구 우창과 우창의 아버지와 하나의 종교(볼교)에 얽힌 이야기가 마침 보드게임처럼 얽혀서 전개된다. 고리처럼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연결되어서 전개되는 데 이런 전개방식을 맘에 들어한다.  나름 스펙타클한 전개 -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와 특이한 인물들이 나오는 것(그런 검표원이 있을까?)이나 그런 종교가 실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석들과 출처가 달려서 나온 것으로 보고 나름 놀라기도 했다. 


한동안 소설을 안 읽다가 최근에 조금씩 다시 읽는 데, 작년에 읽었던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이나 김연수의 소설이나 이 김중혁의 소설은 다시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람들을 알게 된 거 같아서 좋다. 


PS. 세상에는 글 잘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요즘 나름 좌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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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참 좋다 - 8점
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푸른지식

협동조합이라는 말에 대해서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그냥 협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곧 협동조합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일단 이 책은 뉴질랜드, 덴마크, 스위스, 이탈리아등의 협동조합 사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익히 하는 썬키스트, 제스프리등이 협동조합이다. 그런데, 이 협동조합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가장 특이한 구조가 바로 1인 1표제이다. 일반적인 상기업의 경우에는 가진 주식의 양에 따라서 의결권을 가지는 데 반해서 협동조합은 가입하면 무조건 1인 1표제다. 출자금액과는 관계없이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1인1표제이다. 이 부분은 상당히 특이하게 다가 왔다.


이탈리아의 사례들이 좀 다가왔는데, 어린이집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고 거기에 공급하는 식자재를 지역의 협동조합이 공급하고, 그들의 협동조합이 만든 은행이 금융지원을 하고 있는 이런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것인데, 여기에 경쟁력이 생겨서 더 많은 이익을 내기도 하고 잉여금을 적립하고 다른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체제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 주택조합이 집을 지어서 분양하여 집값들이 내려갔단다. 조합은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싼 가격에 집에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집을 지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집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 이런 이야기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사례도 나오는 데, 아이쿱과 한살림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 생협에서 농민들과 구매 계약을 맺어서 일정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받고 시장의 급등/급락에 관계없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추가 금추가 되었을 때에도 적절하게 구매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다. 이게 크다. 믿을 수 있는 식자재를 안전하게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이것은 대단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원주의 의료협동조합도 이런 믿음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몇해전에 금융위기가 닥쳐서 유럽의 은행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을 때, 협동조합 기반의 은행은 생존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조합원을 위한 은행이라서 영리목적보다는 지속가능성에 좀 더 염두를 두고 위험한 투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이상한 투기상품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공학(?)을 들이댄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상품에 투자하지 않으므로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이다. 이상하게 꼬아놓은 유통구조나 설명들이 보통 문제의 소지가 아주 다분하기 때문이다. 


금년 12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도 5명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법이 발효가 된다고 한다. 커피 구매를 위한 협동조합 등등 이런 것들도 생각해보짐하다. 일정한 수요를 만들어내고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조합이라면 누구나 만들고 소비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2012년은 유엔이 제정하 협동조합의 해이다. 공정무역/윤리적소비라는 말이 협동조합이라는 말에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한다. 동네 아이쿱 매장이 있는데 가입을 해야할 거 같다.


PS. 위와 같은 점들에서 우리나라 농협은 반성을 좀 하고 쇄신해서 자리싸움 좀 그만하고 농민들을 위한 조합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농민의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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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닉 - 6점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문학동네


이 책은 장편이다. 이걸 저자인 에르노의 일기라고 해야할까? 본인이 겪은 일만 적는다는 이 작가는 내가 보기엔 실제와 소설을 적당히 버무려서 적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 겸 일기는 한 남자를 만나고 그와 더불어 나누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어쩌면 격정적인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다. 구 소련의 연하 대사관 유부남 직원과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태우는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 사람에 맞추어진 그 이야길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주 사실적으로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열정 - 6점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문학동네

탐닉의 후속편격이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은 얇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감정의 밀도는 탐닉보다는 높다. 그래서 욕망이라고 불리울 수도 있는 그 단순한 열정이 잘 적혀져 있다. 그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열정 혹은 욕망이 탐닉을 거쳐서 여기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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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6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색, 계. 결국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멀리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멀리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하나의 이유는 단순하다.


선을 좀 걸쳐도 되고, 조금 넘어보아도 된다는 것이다. 욕망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통제하려 하지 말고 한 번 해보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보수적이다, 혹은 진보적이다라는 것은 결국은 어쩌면 욕망에 대해서 그대로 나타내는 것과 그것을 잘 지켜내고 담아두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스스로의 욕망을 가두어 두면 그런 것들이 오히려 얼마전에 있었던 중국 영사 사건이나 신정아 사건같은 케이스를 양산하는 것이다. 학벌에 대한 욕망, 잠재된 이성에 대한 욕망들 말이다.

그런데 비단 그런 것만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소유에 대한 욕망들이나 명예에 대한 욕망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예를 들어서 책을 써서 이름이 알려지고 싶다거나 혹은 내가 누군데 하는 것을 타인이 알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대표적인 욕망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국은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본에 대한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점에서 난 책의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의 욕망에 어느 정도 인정하고 그 욕망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도 방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도 불륜에 대해서 공격을 받고서도 그것과는 별도로 자신의 신념을 따라갔다고 적혀져 있다. 인간적인 욕망과 사회적인 욕망이 어쩌면 양립불가한 것이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 쌓은 성(계), 영역을 넓혀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좁은 성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면 언젠가 그것이 샛문으로 이상한 곳으로 새어나가서 사고를 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은밀하고 금지된 것을 원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성을 더 넓게 가지고 가버리면 사고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우리의 욕망에 충실하되 지켜야 할 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어쩌면 저자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아닌가 한다. 


그전에 읽은 구본형의 책"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성에 가두고 욕망을 은밀하게 탐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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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권 신청을 해서 받았다. 최근에는 업무 관련된 기술 서적들을 많이 읽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스펙트럼을 좀 넓혔으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닥치면 읽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거꾸로 보면 인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생겼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역사나 철학관련 책들에 호기심이 많이 생겨있던 참이었다. 마침 메일링 형태로 받던 행복한 상상 (http://rws.kr) 이라는 곳에서 서평 이벤트를 해서 응모하여 이 책을 받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8점
류동민 지음/위즈덤하우스

결과적으로는 마르크스 관련된 나의 첫번째 책이 이 책이 된 것이다. 서두에 이 책을 읽은 나의 생각을 말하라면 그동안 내가 고등학교 시절 - 지금으로부터 20년전? - 의 윤리시간에 배웠던 단순한 몇 가지의 그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뒤집어진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후에 대학에 가서 공대생이 된 나는 그 시절의 학습으로 인하여 (?) 단편적인 이야기들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읽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배웠던 여러가지 과거의 다른 지식들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소설 은교에 나온 바와 같이 문학적/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했던 공대생이라는 것을 핑계로 내밀어보지만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 나온 바와 같이 건축가가 공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변명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를 차용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의 주체로서 일을 하지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책에 나오는 헤겔의 말처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인정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정 욕구를 자기고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나아가는 데 이것이 잘못 되면 권력과도 연결이 되어서 요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헤겔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

를 변혁하는 것이다." - p33


실천하는 것이 곧 세계를 변혁한다는 말은 그의 묘비명에도 적혀있다고 합니다. 이 말에서 아주 그의 가치관리 잘 드러난다고 보여집니다.  변화하는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라는 말도 나옵니다. 


"인간 전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자신과 관계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인간 전체로부터 동떨어져서 나 홀로 규정될 수 있는 그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중략]


유적 존재, 또는 유적 본질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따로 고립되어서 살 수 없고 무리를 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 p44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라는 개념을 보면 인간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여러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의 총합이 곧 사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는 이들 개인이 참여하고 있는 관계의 총합을 표시한다. -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 p91


이 말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노동의 소외라는 부분에서 내가 생산한  그것을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고 그 이익을 내가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구성이 개인으로 시작해서 사회로 나아간 후에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앞서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총합으로 볼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이야기에서 기인하였지만 다시 그 관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문제로 돌아오고 그 개인들간의 교류의 문제로 돌아온다라는 의미로 그렇게 했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현실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저세상(That World)가 아니라 우리가 실존하고 행동하고 만들어가는 이 세상(This World)와 역사에 대해서 고민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을 바꾸고 변혁해야 좀 더 좋은 세상을 후세 혹은 우리 스스로에게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p109


우리가 가지는 사회적 존재감(계급?)이 우리의 법과 사회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의식을 규정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은 글을 읽는 동안에 " 아, 그렇구나"하게끔 만들었다. 즉, 내가 가진 지위와 재화가 내가 가진 의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나의 입장이고 그것이 곧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이고 국가가 되는 것이다. - 물론 마르크스는 이러한 국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체제 밖에서 체제를 바라보고 그를 비판하고 더 나아지기를 바랬다는 것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이야기인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가 현재의 2세기이전에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구나 그거 궁극에는 코뮨주의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점에서는 아직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 역설적으로 생산수단에서는 공유를, 그 이외의 것에서는 사유를 주장했다는 것에서 과거에 내가 들어서 알고 있던 사항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앞서 이야기한 그가 꼬집은 문제점 -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그에 따른 취득의 사적성격에 따른 모순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아주 깊게 돌아보고 시스템을 변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품과 달리 노동력은 그 구매자에게 노동력의 원천인 인간이 통제당한다는 점에서 좀 더 확실히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지는 지지만 개인적으로 문제점은 알겠으나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랄까? 대안이랄까 하는 것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단순히 그가 말한 것처럼 공유하는 것이 답인 것인지도 의문이다. 


결국은 어쩌면 마지막 부분의 장에서 이야기처럼 각각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서면 해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물론 여기서의 자유는 타인을 해하지 않으면서 이루어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건 너무나 이상적이라고 보여진다.


본문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적혀져 있다. "모든 혁명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라고 말이다. 사랑해야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인가가 말이다.


PS. 부록형태로 저자에게 영향을 준 열명의 저자와 한편의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내가 쉽게 접하지 못한 저자나 저작들에 대해서 쓰여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부분들을 찾아서 읽어야겠네라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의미파악이 쉽지 않은 용어 한 두개가 나왔다는 점이 좀 아쉽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미미하지만 말이다. - 대부분은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글을 쓰시고 그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형태로 글들이 구성되어져 있어서 설명이 다 되어져 있다.  인문학적인 용어들일 수도 있어서 그 의미 전달때문에 용어들을 쓰신 것일 수도 있으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고 용어에 대해서 좀 풀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록의 유비같은 것이나 간난 등이 예이다. 각주/미주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에 누군가가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를 써서 찾아보기도 했던 기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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