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모노레일 - 8점
김중혁 지음/문학동네

처음 읽은 김중혁의 장편소설인데, 몰입도도 좋고 이야기의 전개도 좋다. 그리고 소재도 특이하고 재밌다. 그것으로 이 소설은 아주 좋다. 


김중혁의 네번째 소설이자 두번째 장편소설. '독학'으로 터득한 자신만의 감각으로 이 시대와 함께 노는 작가, 김중혁이 또 한번 게임판을 벌였다. <미스터 모노레일>은 '놀이'하는 소설가 김중혁의 일체형 맞춤소설이다. 사람 김중혁과 소설가 김중혁, 게임과 현실, 그리고 작품이 꼭 하나를 이루는 <미스터 모노레일>, 이번엔 '주사위놀이'이다. 

두 개의 주사위를 던진다. 공중에서 무수히 방향을 달리하던 주사위는 땅에 떨어지는 순간 각각 하나씩의 숫자를 내보이고, 그 숫자만큼 말은 이동한다. 그곳은 함정이나 구덩이일 수도, 또 생각지 못한 행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시 주사위는 던져지고, 말은 또다시 이동한다. 

어느 날 아침, 잠을 푹 자고 일어난 모노는 눈을 뜨자마자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곧바로 게임의 룰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노는 지도를 펼친 다음 유럽의 모든 도시 위에다 가상의 모노레일을 하루 만에 건설했고, 곧바로 혼자만의 모험을 떠났다. 블루, 화이트, 레드, 블랙, 핑크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헬로, 모노레일' 게임의 시작이다. 

김중혁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게, <미스터 모노레일>의 주인공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대한민국 상위 %가 아니다. 한없이 머뭇거리고 수줍은 소심한 일반인들, 하지만 각자가 모두 제 삶의 주인공인 우리들이다. 

보드게임 '헬로, 모노레일'을 만든 모노와 그의 '친구들'은 예기치 않게,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어떤 사건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자신이 만든 게임의 말이 된 듯, 누군가 던져놓은 주사위가 보여주는 숫자만큼 사건에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고, 함정을 만나고, 해결하고, 그리고 종착역을 향해 다가간다.



윗 글은 알라딘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보드게임을 모노와 그의 친구 우창과 우창의 아버지와 하나의 종교(볼교)에 얽힌 이야기가 마침 보드게임처럼 얽혀서 전개된다. 고리처럼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연결되어서 전개되는 데 이런 전개방식을 맘에 들어한다.  나름 스펙타클한 전개 -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와 특이한 인물들이 나오는 것(그런 검표원이 있을까?)이나 그런 종교가 실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석들과 출처가 달려서 나온 것으로 보고 나름 놀라기도 했다. 


한동안 소설을 안 읽다가 최근에 조금씩 다시 읽는 데, 작년에 읽었던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이나 김연수의 소설이나 이 김중혁의 소설은 다시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람들을 알게 된 거 같아서 좋다. 


PS. 세상에는 글 잘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요즘 나름 좌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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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참 좋다 - 8점
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푸른지식

협동조합이라는 말에 대해서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그냥 협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곧 협동조합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일단 이 책은 뉴질랜드, 덴마크, 스위스, 이탈리아등의 협동조합 사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익히 하는 썬키스트, 제스프리등이 협동조합이다. 그런데, 이 협동조합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가장 특이한 구조가 바로 1인 1표제이다. 일반적인 상기업의 경우에는 가진 주식의 양에 따라서 의결권을 가지는 데 반해서 협동조합은 가입하면 무조건 1인 1표제다. 출자금액과는 관계없이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1인1표제이다. 이 부분은 상당히 특이하게 다가 왔다.


이탈리아의 사례들이 좀 다가왔는데, 어린이집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고 거기에 공급하는 식자재를 지역의 협동조합이 공급하고, 그들의 협동조합이 만든 은행이 금융지원을 하고 있는 이런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것인데, 여기에 경쟁력이 생겨서 더 많은 이익을 내기도 하고 잉여금을 적립하고 다른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체제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 주택조합이 집을 지어서 분양하여 집값들이 내려갔단다. 조합은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싼 가격에 집에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집을 지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집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 이런 이야기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사례도 나오는 데, 아이쿱과 한살림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 생협에서 농민들과 구매 계약을 맺어서 일정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받고 시장의 급등/급락에 관계없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추가 금추가 되었을 때에도 적절하게 구매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다. 이게 크다. 믿을 수 있는 식자재를 안전하게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이것은 대단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원주의 의료협동조합도 이런 믿음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몇해전에 금융위기가 닥쳐서 유럽의 은행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을 때, 협동조합 기반의 은행은 생존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조합원을 위한 은행이라서 영리목적보다는 지속가능성에 좀 더 염두를 두고 위험한 투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이상한 투기상품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공학(?)을 들이댄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상품에 투자하지 않으므로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이다. 이상하게 꼬아놓은 유통구조나 설명들이 보통 문제의 소지가 아주 다분하기 때문이다. 


금년 12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도 5명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법이 발효가 된다고 한다. 커피 구매를 위한 협동조합 등등 이런 것들도 생각해보짐하다. 일정한 수요를 만들어내고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조합이라면 누구나 만들고 소비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2012년은 유엔이 제정하 협동조합의 해이다. 공정무역/윤리적소비라는 말이 협동조합이라는 말에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한다. 동네 아이쿱 매장이 있는데 가입을 해야할 거 같다.


PS. 위와 같은 점들에서 우리나라 농협은 반성을 좀 하고 쇄신해서 자리싸움 좀 그만하고 농민들을 위한 조합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농민의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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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닉 - 6점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문학동네


이 책은 장편이다. 이걸 저자인 에르노의 일기라고 해야할까? 본인이 겪은 일만 적는다는 이 작가는 내가 보기엔 실제와 소설을 적당히 버무려서 적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 겸 일기는 한 남자를 만나고 그와 더불어 나누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어쩌면 격정적인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다. 구 소련의 연하 대사관 유부남 직원과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태우는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 사람에 맞추어진 그 이야길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주 사실적으로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열정 - 6점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문학동네

탐닉의 후속편격이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은 얇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감정의 밀도는 탐닉보다는 높다. 그래서 욕망이라고 불리울 수도 있는 그 단순한 열정이 잘 적혀져 있다. 그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열정 혹은 욕망이 탐닉을 거쳐서 여기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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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6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색, 계. 결국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멀리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멀리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하나의 이유는 단순하다.


선을 좀 걸쳐도 되고, 조금 넘어보아도 된다는 것이다. 욕망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통제하려 하지 말고 한 번 해보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보수적이다, 혹은 진보적이다라는 것은 결국은 어쩌면 욕망에 대해서 그대로 나타내는 것과 그것을 잘 지켜내고 담아두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스스로의 욕망을 가두어 두면 그런 것들이 오히려 얼마전에 있었던 중국 영사 사건이나 신정아 사건같은 케이스를 양산하는 것이다. 학벌에 대한 욕망, 잠재된 이성에 대한 욕망들 말이다.

그런데 비단 그런 것만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소유에 대한 욕망들이나 명예에 대한 욕망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예를 들어서 책을 써서 이름이 알려지고 싶다거나 혹은 내가 누군데 하는 것을 타인이 알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대표적인 욕망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국은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본에 대한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점에서 난 책의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의 욕망에 어느 정도 인정하고 그 욕망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도 방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도 불륜에 대해서 공격을 받고서도 그것과는 별도로 자신의 신념을 따라갔다고 적혀져 있다. 인간적인 욕망과 사회적인 욕망이 어쩌면 양립불가한 것이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 쌓은 성(계), 영역을 넓혀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좁은 성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면 언젠가 그것이 샛문으로 이상한 곳으로 새어나가서 사고를 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은밀하고 금지된 것을 원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성을 더 넓게 가지고 가버리면 사고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우리의 욕망에 충실하되 지켜야 할 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어쩌면 저자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아닌가 한다. 


그전에 읽은 구본형의 책"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성에 가두고 욕망을 은밀하게 탐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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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권 신청을 해서 받았다. 최근에는 업무 관련된 기술 서적들을 많이 읽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스펙트럼을 좀 넓혔으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닥치면 읽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거꾸로 보면 인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생겼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역사나 철학관련 책들에 호기심이 많이 생겨있던 참이었다. 마침 메일링 형태로 받던 행복한 상상 (http://rws.kr) 이라는 곳에서 서평 이벤트를 해서 응모하여 이 책을 받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8점
류동민 지음/위즈덤하우스

결과적으로는 마르크스 관련된 나의 첫번째 책이 이 책이 된 것이다. 서두에 이 책을 읽은 나의 생각을 말하라면 그동안 내가 고등학교 시절 - 지금으로부터 20년전? - 의 윤리시간에 배웠던 단순한 몇 가지의 그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뒤집어진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후에 대학에 가서 공대생이 된 나는 그 시절의 학습으로 인하여 (?) 단편적인 이야기들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읽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배웠던 여러가지 과거의 다른 지식들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소설 은교에 나온 바와 같이 문학적/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했던 공대생이라는 것을 핑계로 내밀어보지만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 나온 바와 같이 건축가가 공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변명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를 차용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의 주체로서 일을 하지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책에 나오는 헤겔의 말처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인정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정 욕구를 자기고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나아가는 데 이것이 잘못 되면 권력과도 연결이 되어서 요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헤겔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

를 변혁하는 것이다." - p33


실천하는 것이 곧 세계를 변혁한다는 말은 그의 묘비명에도 적혀있다고 합니다. 이 말에서 아주 그의 가치관리 잘 드러난다고 보여집니다.  변화하는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라는 말도 나옵니다. 


"인간 전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자신과 관계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인간 전체로부터 동떨어져서 나 홀로 규정될 수 있는 그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중략]


유적 존재, 또는 유적 본질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따로 고립되어서 살 수 없고 무리를 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 p44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라는 개념을 보면 인간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여러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의 총합이 곧 사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는 이들 개인이 참여하고 있는 관계의 총합을 표시한다. -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 p91


이 말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노동의 소외라는 부분에서 내가 생산한  그것을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고 그 이익을 내가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구성이 개인으로 시작해서 사회로 나아간 후에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앞서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총합으로 볼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이야기에서 기인하였지만 다시 그 관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문제로 돌아오고 그 개인들간의 교류의 문제로 돌아온다라는 의미로 그렇게 했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현실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저세상(That World)가 아니라 우리가 실존하고 행동하고 만들어가는 이 세상(This World)와 역사에 대해서 고민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을 바꾸고 변혁해야 좀 더 좋은 세상을 후세 혹은 우리 스스로에게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p109


우리가 가지는 사회적 존재감(계급?)이 우리의 법과 사회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의식을 규정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은 글을 읽는 동안에 " 아, 그렇구나"하게끔 만들었다. 즉, 내가 가진 지위와 재화가 내가 가진 의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나의 입장이고 그것이 곧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이고 국가가 되는 것이다. - 물론 마르크스는 이러한 국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체제 밖에서 체제를 바라보고 그를 비판하고 더 나아지기를 바랬다는 것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이야기인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가 현재의 2세기이전에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구나 그거 궁극에는 코뮨주의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점에서는 아직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 역설적으로 생산수단에서는 공유를, 그 이외의 것에서는 사유를 주장했다는 것에서 과거에 내가 들어서 알고 있던 사항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앞서 이야기한 그가 꼬집은 문제점 -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그에 따른 취득의 사적성격에 따른 모순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아주 깊게 돌아보고 시스템을 변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품과 달리 노동력은 그 구매자에게 노동력의 원천인 인간이 통제당한다는 점에서 좀 더 확실히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지는 지지만 개인적으로 문제점은 알겠으나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랄까? 대안이랄까 하는 것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단순히 그가 말한 것처럼 공유하는 것이 답인 것인지도 의문이다. 


결국은 어쩌면 마지막 부분의 장에서 이야기처럼 각각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서면 해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물론 여기서의 자유는 타인을 해하지 않으면서 이루어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건 너무나 이상적이라고 보여진다.


본문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적혀져 있다. "모든 혁명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라고 말이다. 사랑해야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인가가 말이다.


PS. 부록형태로 저자에게 영향을 준 열명의 저자와 한편의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내가 쉽게 접하지 못한 저자나 저작들에 대해서 쓰여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부분들을 찾아서 읽어야겠네라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의미파악이 쉽지 않은 용어 한 두개가 나왔다는 점이 좀 아쉽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미미하지만 말이다. - 대부분은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글을 쓰시고 그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형태로 글들이 구성되어져 있어서 설명이 다 되어져 있다.  인문학적인 용어들일 수도 있어서 그 의미 전달때문에 용어들을 쓰신 것일 수도 있으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고 용어에 대해서 좀 풀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록의 유비같은 것이나 간난 등이 예이다. 각주/미주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에 누군가가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를 써서 찾아보기도 했던 기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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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8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일단 책의 두께는 얇다. 책안에는 두 개의 철학적인 에세이가 있다. 제목과 같은 피로사회와 우울사회가 있는 데, 우울사회는 피로사회를 보충하기 위한 성격의 문서로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실은 거의 같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이 글의 내용들이 2010년 독일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듯 싶다는 생각이다. 근대 철학의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많은 철학자를 낳았고 또 기르고 있는 곳이라서 비교적 그 기반이 탄탄하여 화제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에는 그 시대마다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에서 근대의 규율사회에서 현재의 성과사회로 이동하면서 자기 착취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근대의 규율사회에서는 타자가 자아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성에 기반하여 면역학적인 반응 - 거부 반응이 주류를 보인다면, 현대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넘어서 긍정적인 동질성에 기반한 합의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그것에 대해서 끝도 없이 이어가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 완결하지 않고 미완이라야 착취는 영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결국은 이러한 것이 피로를 가지고 왔고 그 피로를 이기기 위해서 끝에는 약물을 이용하여 넘어서는 도핑사회로의 이야기도 하고 있다. 도핑사회로 간다는 것은 결국은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과 같으므로 책에서 언급한 니체가 말한 중단적 본능을 작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중단하지 않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활동적 삶일 것인데, 이는 곧 그 완결을 보여주지 않는 그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색적인 삶으로의 회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의 자아는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있다. 물론 이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생존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기계적 반복 노동을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삶이란 결국은 스스로를 호모 사케르로 만들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호모 리베르라고 말이다. 난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말이다.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 구나!" 

- p112.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용 부분


뱀다리

- 역자 후기도 읽어보면 압축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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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8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에밀 아자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로맹 가리의 다른 이름이다. 성공한 작가가 자기의 이름을 숨기고 다른 필명으로 글을 써낸 것이다. 로맹 가리가 자살한 1980년에서야 이 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이야기는 이슬람교도로 태어난 모모라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부모가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고 누군가에 맡겨져서 자라는 것이다. 주변의 환경은 창녀들과 조폭, 포주들인 상황이다. 그러니깐 2차대전이후의 프랑스 뒷골목이 그 배경인 셈이다.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이 되고 사회문제가 되는 그런 이야기와 어쩌면 그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태어난 많은 생명들이 자라나는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전에 꿈꾸는 카메라라는 인도 빈민굴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의 부모는 포주 혹은 창녀였고 그도 아니면 아예 모르는 버림받은 상태였다. 태어나는 것이 선천적인 것이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환경이 정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것인데..

어쩌면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모모는 내가 보기엔 순순히 자기 앞에 놓인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길 원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담담히 말이다. 

삶은 그냥 그가 어디서 태어났느냐보다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올라가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편가르기를 하고 험담하기엔 우린 너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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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 6점
알레한드로 융거 지음, 조진경 옮김, 이상철 감수/쌤앤파커스

개인적으로 가장 몸상태가 좋았다고 느꼈던 때가 70-72 kg 사이였던거 같다. 그래서 지금의 몸무게에서 줄이려고 하고 있다. 나이먹으니 게을러지고 술담배에 폭식하고, 그래서 4월까지 72까지 줄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절한 운동도 좀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 책이 생각나서 빌려서 읽었다. 이 책의 요지는 아주 간단하다.

인산이 가진 자기 치유력을 재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즉, 생식이나 채소를 잘 먹고, 몸을 깨끗하게 하면 스스로 치유가 되고 몸무게같은 것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신진대사도 원활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은 가공이 된 음식이라서 독소가 있는 것이므로 1년에 한번 정도는 디톡싱을 해서 몸의 나쁜 것을 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니깐 간단하게 생각하면 소식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고, 채소를 먹는 등의 건강식을 하면 몸은 저절로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의사였는 데, 인도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각 나라의 의사들에게서 많은 정보를 듣고 그 것을 합친 것이다. 특히, 한의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소식하시고, 많이 움직이고, 채소를 먹거나 생식하라. 그것도 힘들면 정기적인 디톡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라는 것이다. 몸이 좀 쉬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라고 이야길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 생각에는 그냥 욕심내지 않는 것이 가장 먼저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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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8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문학동네

왜 이제야 이걸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이상하고 기괴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역사적인 사실들을 관통한다는 느낌이다. 단편집이지만 하나의 주제로 뭉쳐진 듯한 느낌의 소설집이다. 시대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우화적인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써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생각나는 단편은 벽이라는 이름의 단편이다. 옆집 여자를 사모한 청년이 옆집 여자가 남자와 자고 신음소리를 내자 자살하고 왕진한 의사는 유서를 본 후에 그 옆집 여자가 궁금해서 보려고 하자 실은 그여자의 신음소리는 자살하려고 독극물을 먹고 죽어갈 때 내던 소리였다는 이야기는 아주 기괴하면서도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지상의 주민들은 전쟁의 상처 투성이를 짧지만 그것이 승자든 패자든 간에 무엇을 남겼는 지에 대해서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둘기 시민은 서구인들이 러시아 혹은 소련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세상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유태인 수감자가 남미로 도망온 나치 간수에게 음식을 바치고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 것은 그냥 삶에서 약간 도망치는 듯한 이야기로 그려지기도 한다.

아..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짧지만 써내는 상상력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난 왜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가들이란 어쩌면 그런 상상을 하는 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이제 읽어야 할 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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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8점
한강 지음/문학동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읽는 한강의 소설이다. 아주 오래전에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 데,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하나는 그 소설이 감정이 아주 깊게 패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책을 읽을 때, 느끼었던 것은 박경리의 소설에서나 보이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그보다 훨씬 나이 어린 작가가 그런 느낌을 뿜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놀라워했었던 기억이 있다. - 그게 내 여자의 열매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소설은 두 명의 축이 있다. 여자와 남자인데, 한명은 독일에서 살다가 돌아온 이제 시력을 잃어가는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이며, 여자는 양육권을 뺏긴 희랍어 수강생이다. 그렇게 이 둘은 본인들의 갈등 구조를 가지고 희랍어 시간에 강의를 하는 자와 듣는 자로 만나게 된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조금은 절망적인 미래에 대해서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그냥 그렇듯이 그것을 순순히 받아 들여야만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깐 독일에서 살다가 혼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배울 사람도 별로 없고 알아주주지도 않는 희랍어를 가르치는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경제력의 상실 문제로 양육권을 잃어버린 여자는 말도 잃고 그러고 나서 희랍어를 배우고 있다. 한명은 잃어가는 중이고 한명은 이미 잃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희랍어 시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 만나고 있지만 실은 상실의 고리를 연결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거의 죽어버린 언어를 통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한글 고문을 읽고 써야 할 이유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일부 학자들이나 할 일이지 않을까?

상처를 가지고 있거나 상처를 가져야만 할 자들이라면 다른 자들이 가지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획득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그것이 때로는 자기애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실은 그 상처들을 가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교묘한 포장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므로 난 무슨 무슨 척이 싫은 편인데 이 책에선 그렇게 강한 척 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읽은 한강의 소설에서 내가 느낀 점은 그것이다. 상처로 뒤덮여져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의 살아감에 대해서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이런 작가들이 맘에 든다. 괴상한 사건들로 덕지덕지 포장한다는 느낌도 없고 그냥 담담하게 이야기한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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