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의 다큐와 이 영화중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생각하다가 보게 된 영화이다. 몇 분이 추천을 한 영화이고 말이다. 글들에서 일부 스포성이 있으니 읽으실 분들은 알아서 읽으시길 바란다. 


이 영화는 기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미국에선 ZERO, 남아공에선 HERO?! 
팝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가수, ‘슈가맨’의 놀라운 이야기!


● 본고장 미국: 음반 판매 6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운의 가수! 
● 반대편 남아공: 밀리언셀러 히트가수, ‘엘비스’보다 유명한 슈퍼스타! 

70년대 초, 우연히 남아공으로 흘러 들어온 ‘슈가맨’의 앨범은
수십 년간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다. 
하지만 ‘슈가맨’은 단 두 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신비의 가수! 

전설의 ‘슈가맨’을 둘러싸고 갖가지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두 명의 열성 팬이 진실을 밝히고자 그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단서라고는 오직 그의 노래 가사뿐! 
기발한 추적 끝에 ‘슈가맨’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위 줄거리는 다음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기본은 아주 간단하다. 두 장의 음반을 내고 사라졌던 음악가를 찾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 나라에서는 아주 음반이 팔리지 않아서 궁핍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남아공에서는 빅히트를 기록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음반을 듣게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후에 그는 빅히트 국가로 날아가서 공연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략적인 이야기는 그렇지만 음반 제작자나 프로듀서 등이 이야기하는 이 음악가에 대한 것이 아주 놀라웠다. 유명한 음악가들과 작업한 이들이 밥 딜런에 비유를 한다거나 - 가사에 이런 내용이 담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 자신이 알고 있는 아티스트중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에서 나도 그렇고 그 사람들도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차를 몰고 빗속에서 콜드플레이를 들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왜 히트를 못했을 까? 사운드트랙도 상당히 좋은 데 말이다. 그런데 문득 비슷한 느낌의 영화 한편이 생각이 났다.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아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이 다큐의 주인공도 공연을 다니고 그러겠지 말이야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그것은 공연으로 얻은 수익을 가족과 친구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그냥 살던 집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일을 나가서 막노동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 왠지 이 부분에서 길위의 철학자인 에릭 호퍼도 생각이 났다. 그냥 이사람은 누군가가 아주 오래 시간이 흘러서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고 좋아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이 사람이 라틴계 블루컬러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백인이었다면 말이다. 로드리게즈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면 아주 정말 밥 딜런만큼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그로서도 만족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 사람이 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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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daum]


김기덕의 영화를 많이 본 편도 아니거니와 영화제 수상소식을 알기이전에 영화를 볼려고 마음 먹었던 지라 그것과는 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분의 영화는 지방 도시의 멀티플렉스에 걸리지도 않았던지라 대부분 케이블을 통해서 봤던 것이거나 아님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극장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봐야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3개의 멀티플렉스중에서 유일하게 걸은 롯데를 좀 좋게 보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삼색시네마전을 안하는 거 같아서 좀 씁슬하다.


각설하고 아침 8:30분 조조 영화를 봤다. (생각보다 관객이 많아서 놀랐다.) 일단 내가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인 섬이나 악어, 나쁜 남자보다는 일단 그 충격의 강도면에서 덜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이 감독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주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영상으로 담아낸다는 점이다. 그것이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고, - 특히 섬에서 몇몇 장면은 힘들었던 기억이 있고, 나쁜남자는 이건 머라고 해야하나 파괴적인 본능이라고 해야하나.- 이 영화는 그것과는 달리 대중에게 왠지 인정받기 위한 스스로의 스타일을 조금은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나른 추측하건대 장훈 감독건도 있었고 영화들이 대중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의 극장에서 내리는 이 상황에 대해서 나름의 상황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확실히 그 충격의 강도는 이전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한명이 자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휠체어에서 전동 크레인의 쇠줄에 목을 감고 스스로를 들어올린다. 그가 왜 휠체어에 있는지는 이후의 장면들에서 나온다. 영화의 이강도(이정진)는 돈을 받으러 다니는 추심업자이다. 그리고 갑자기 그에게  30년만에 엄마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그러면서 이 여자와의 동거가 시작한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적인 파괴적 장면도 나오고 그 여자를 통해서 좀 더 세상을 좀 더 바라볼수 있게 된다. 매일 마다 날것을 먹어대는 장면에서 어쩌면 우린 타인의 삶을 먹고 - 이것은 돈과 결부된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는 안될 것도 없다. - 그것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영화관에서 앉아있는 동안에 내가 지불한 돈이 누군가의 삶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생각과 그것으로 인해 죽어간 자들이 있을거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순간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영화의 이야기는 엄마라는 여자와 나와의 관계가 핵심이다. 이 이야기에서 갑자기 등장한 엄마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 뻔하므로 자제를 해야겠지만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엄마라는 존재로 인하여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 변화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엄마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나란 존재는 세상에 동화되어가지만 살아가기에는 나약해진 존재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독종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이 사회라고 생각이 되지만 스스로를 열어버린 상황에서 다른 것은 무의미해져가는 것이다. 악마새끼로 불리는 추심업자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돈과 연민, 타인의 삶을 갈아먹는 것, 복수, 자학 이런 것들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나가야하는 도시 근교 빈민의 삶과 대비되는 도시의 불빛들이 묘하게  다가온다. 결국은 나도 아침이 밝아올때 출근을 해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삶을 살아야하는 이 시스템의 아주 작은 부속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7시전후에 출근을 하고 그러고 나서 저녁 7시전후에 퇴근하는 그런 삶말이다. 


그러다가 이런 이야기라도 보면서 나름의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기덕영화가 여성들에게 아주 불편하다는 이야길 들었고 주변에도 힘들어하는 분들 있다. 아마도 섬과 나쁜남자탓일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봐도 그러하다. 여성을 수동적인 상대로 폭력적으로 다룬다. 막말로 막 대하고 바닥으로 끌어내려서 아주 망가지게 만든다. 그래서 싫어하는 듯하다. 파괴적으로 여성을 대한다. 그리고 아주 폭력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좀 다르게 보여질 수 도 있을 거 같다. 그런 고로 이전의 그 영화들과 다르지 않나요?라고 나는 묻고 싶다. 좀 더 주체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나요?하고 싶은 데 다른 분들의 의견을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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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이 영화를 봤습니다. 일단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대보단 별로였습니다. 전작에서의 감독 역량에 대해서 아주 놀랍다는 생각을 했고, 이미 죽은 히스 레저의 연기가 다크 나이트에서 절정을 발했던 탓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기대치가 높았던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아주 잘 따른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전작의 장면들이 영화를 보면서 스쳤는 데, 선과 악에 대해서 인간이 타인에 대해서 가지는 태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그 전작에서는 아주 잘 나타났고 그런 화두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했던 반면에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확 사라지고 그냥 몰락한 영웅 -> 악이 나타남 -> 악이 득세 ->  영웅의 몰락 -> 고통받는 시민 -> 영웅이 다시 돌아옴 이라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무협지에서 신나게 나오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만화방에 가면 무협만화보면 거의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단골이야기죠. 

- 어쩌면 이 시기의 저의 나름 상상력과 돌파구를 제공한 것은 이 시기의 무협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그냥 저에게 어떤 이야기가 남았나 생각을 했는 데, 불행히도 없었습니다. 전작에서는 있었는 데 말입니다. 이건 그냥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입니다. 물량공세를 해서 기괴한 영웅주의를 나타낸 작품인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 이상을 기대한 제가 잘못일까요? 

그리고, 또 다른 시리즈를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은 "아..이 새끼들..그냥 깔끔하게 죽지. 또 울궈먹을려고 드네."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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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영화 두편을 봤다. 사실 한편은 볼 생각이 없었다. 스파이더맨은 볼 생각이 없고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영화를 볼 생각으로 갔다가 시간이 되어서 두 편을 보게 된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자위대의 재무장(?)을 요구하다가 일본 자위대 건물에서 자살한 인물이다. 물론 그전에는 나름대로 유명한 인사였다. 소설이나 희곡, 영화등을 감독해서 일본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가 끝나고 진중권교수의 미시마에 대한 강연이 예정되어져 있어서 인디 영화치고는 만석이 되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후로 만석영환 처음이었다. 그전에 워낭소리 보러 갈때도 매진이 아니었는데 유명인사가 있어서 매진까지 된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일단 긍정적이다. 지인은 자료 조사하고 하다가 이 영화가 보기 싫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천황에게 권력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창한 것도 있고해서 더 싫어졌을 수도 있다. 


일단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서 알고자 하면 위키피디아나 다른 자료를 검색해서 좀 찾아보면 알겠지만 그 유명한 동경대 전공투와의 1대 300? 토론도 있다. 이후 장년이 되고 난 이후에 육체를 가꾸어서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이건 유미주의성격이 강하다고 보여진다는 진중권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영화 내에서도 그리스이후 장년기에 육체를 근육질로 트레이닝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육체를 파괴하는 그런 장면들도 나오고 말이다.  


- 미시마 유키오 위키 Link


그전까지 내가 그냥 검색해서 알던 시각과 다르게 진중권교수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길 해주었다. 미시마는 일단 스스로 정신적/육체적 절정에 이르러서 그 아름다움이 가장 클 때 , 스스로를 죽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려는 시각을 나타내었다. 단지 자위대 건물에 들어가서 총감을 생포하고 자위대원들에게 연설하고 결국은 할복한 것은 병사하거나 늙어죽는 것과 같은 아무 의미없슴에 대해서 스스로의 죽음을 아름답게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장치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영화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견으로 나와서 내가 가지고 있던 시각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에로스와 타나토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가장 미학적으로 보여지고 싶은 것들이 아마도 그것이고 유혹이 강한 것도 그것이리라. 


그래서 든 생각이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내용을 좀 더 중시하는 것같고 일본인들은 형식을 좀 더 중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해서 인간적이고 영웅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위험하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미시마 유키오를 보고나서 스파이더맨을 보았는데, 이건 지금까지이 스파이더맨 스토리를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Reboot 이라고 하던데, 일단 보는 시간은 즐거운데 그 담에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여배우인 엠마 스톤이 이쁘네하는 정도였고 엔딩 크레딧 올라간 담에 한장면 더 나와서 이후의 스토리라인과 연결을 암시하는 것이 나왔다는 것이다. 일단 사실 이런 영웅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그냥 볼때 즐겁고 나와서 기분좋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난 에이리언과 프로메테우스 연결부분이 더 궁금하고 블레이드 런너의 프리퀄이 더 궁금하고, 이달 말 개봉예정인 놀란감독의 배트맨이 더 궁금할 뿐이라서 말이다. 이 스파이더맨에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울 거 같다. 기존 스토리라인을 재구성하고 그냥 배우들만 바꾸어서 나와서 말이다.

- 헐리우드에선 더 팔아먹을 영웅이 없는 것은 아닐까? 에일리언도 팔고 프레데터도 팔고 마블의 영웅들 떼거지로 나오고 이젠 누굴 팔아먹을까? 홍길동을 한번 팔아보든가..아님 전우치 리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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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건축가 (2012)

Talking Architect 
9.5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승효상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5 분 | 2012-03-08





건축가 정기용(66세)은 척박한 한국 건축문화의 문제점을 설파하고 이 땅에서 건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한국 현대건축의 2세대에 속하는 대표적인 건축가인 그는 전북 무주에서 12년 동안 진행한 공공건축 프로젝트와 전국 6개 도시에 지은 어린이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 등을 통해 건축의 사회적 양심과 공공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인 말로써 한국의 건축 제도를 개선하고 대안적인 건축 철학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 지식인이다. 또한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 건축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흙을 이용하는 건축 방법을 고민했다. 
현재 정기용은 건강이 좋지 않다. 5년 전 설계차 들린 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고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퇴원 후에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암치료의 부작용이 낳은 성대결절로 인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정기용. 말을 전하기 위해 마이크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부산시 공무원들과 함께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답사하던 정기용은 무주 등나무 운동장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된 것을 보고 불 같이 화를 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용은 서울 광화문 일민 미술관으로부터 단독 건축전 개최를 제안 받는다. 정기용은 이 건축전을 준비하면서 평생에 걸쳐 쌓아온 성과물을 보다 폭넓은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러나 전시 준비 과정은 순탄하지가 않다. 일민미술관 측과 정기용의 전시 준비 팀은 전시 규모와 내용을 두고 갈등한다. 시간은 흐르고 정기용은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진다. 죽음을 앞둔 정기용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과 집들을 되돌아보면서,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나간다. <말하는 건축가>는 그의 마지막 전시 준비 과정을 축으로 그의 삶의 궤적, 그의 건축 철학과 작업, 그리고 죽음에 직면한 한 인간의 예민한 심리를 포착한다.


줄거리와 포스터는 Daum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죽어가는 건축가의 이야기이다.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든 건축가의 이야기인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주변과 연결되는 공간에 대해서 고민했던 건축가의 이야기이다. 비주류건축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쩌면 죽음에 직면한 한 건축가가 아닌 철학자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빛과 공간, 쓰임들..


회화는 그 것을 보기 위해서 직접 가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은 매일 사용하고 쓰인다. 그런데, 단지 건축가들이 업자로만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 건축가는 건축전을 통해서 깨고 싶어한다. 그들은 공간과 빛을 고민하는 사람들이고 철학자들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업자에게 맡기면 그들은 그 업자스러움으로 우리에게 공간을 만들어 줄 것이고, 그들에게 그 공간의 쓰임새와 빛의 연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러한 공간이 나올 것이다. 닭장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는 빛이 집 구석구석을 감싸고 흙이 있는 곳이 좋지 않을까?  살 곳이 필요한 것이지 돈이 얼마나 오르는 지 관심있지 않다.


안 보신 분들은 이 영화 보셨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권해드린다. 이런 다큐 흔치 않다. 더구나 죽음에 직면한 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말이다.  상영하는 데는 아래 카페를 참고하면 된다.


http://blog.naver.com/talking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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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

Movie/2012 2012.04.08 16:31



그냥 머 봤는데..누구 이야기처럼 남자들의 첫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좋았을까? 

나에게는 엇갈리고 상처투성이인처로 돌아보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혹시나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쌍놈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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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

Movie/2012 2012.04.08 16:26





퇴근하다가 라디오를 들었다. 그러다가 나온 음악들이 좋아서 영화를 찾아보고 보았다. 스토리 라인 자체는 사실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음악들은 계속 깔리고 그 음악들이 전체적으로 이 애니를 잘 나타내고 있는 거 같다.


쿠바를 배경으로 노회한 음악가를 회상하는 것에서 드는 생각이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애니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들이 직접 연주하는 것이 적은 대신에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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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결혼할 여자가 사라진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내가 알던 여자에 대해서 실은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작자인 미야베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나에겐 전혀 없다. 아마도 한동안 소설 책을 멀리하고 사회 현상이나 역사책을 들여다본다거나 아니면 어줍잖게 자기계발에 몰두한 탓일 것이다. - 그렇다고 자기 계발이 잘 된 상황도 아니고 사회현상을 내 나름의 시각으로 잘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식견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단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는 데에 매몰된 탓이다.

화차의 뜻이 악행을 저지른 불의 수레로 지옥을 향해가는 내릴 수 없는 것이라면 사실 우리 모두는 한두번씩은 법이나 도덕을 어긴 적이 있거나 그것을 어기려는 행위를 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상대적으로 크다든가 아니면 작다든가 하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에 우리는 종교를 믿고 구원받길 원하는 것이다. - 신이 인간을 구원한다기 보다는 인간이 먼저 인간을 용서하고 나서 그 다음에 신이 구원을 해주던가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갑자기 영화 밀양이 생각나서 말이다. 자기 딸을 죽인 인간을 교도소에 면회가니 신에게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신이 살인자를 용서하는가라며 절규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사람이 그것을 피하려 타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 사람의 신분을 뺏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했다. 왜냐하면 본인이 원하지도 않던 삶으로 가는 데, 그 개인만 부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신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앞서서 내세우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반복적인 개인문제가 그 사회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에서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고 그걸 극복하고 잘 사는 사람도 있으니 그걸 본받으라고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논리였던거 같은 데 말이다. 

이런 논리가 극단화되고 개인화되면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것일 것인데, 단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타인을 죽음으로까지 내몰면서 살는 것이 옳은가?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끝부분이 약간 좀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하면서 나아갔으면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데, 이 영화에서는 김민희가 아주 그 배역에 잘 어울리게 나왔다는 것이다. 머랄까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영화속에서의 옷빨만큼이나 그렇게 잘 보였다. 
- 이건 거의 김민희영화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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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라는 이야길 듣고 갔다. 그래서 기대를 더욱 했다. 왜냐하면 최근에 나 스스로 안 건데 내가 전개가 빠른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적인 무성영화식의 이야기라면 당연하게도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더구나 영화의 스토리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들어서 당연하게도 흥미가 생겼다. 그런 상태에서 조용한 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가게 된 것이다. - 차 사고가 나서 내 차는 정비공장에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것인데, 이 영화는 무성과 현대적인 유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물론 두 배우가 하나는 무성을 대표하는 배우로 나오고 하나는 유성을 대표하는 배우로 나온다.  그런데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사랑이야기로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느낀 것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황에 대해서 둘을 잘 엮어내서이기 때문이다.

유성이 무성을 사랑한다. 무성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무성은 약간 무심하다. 결국은 잘 끝났지만 역시 살포시 드는 생각은 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독이 의도한 바는 혹시 시대가 변해도 그 뒤따라오는 것은 결국은 그 윗대를 존경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그 근본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다. 영화의 말미에는 유성을 거부하는 무성배우가 결국은 유성배우와 같이 영화를 찍는다. 그런데 말이다. 그 마지막 영화에서는 말이 필요없다.  결국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에는 그렇게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 마지막 영화는 그 고전적인 프레드 아스테어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표현력의 부족이 결국은 많은 오해를 낳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은밀하게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닌 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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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의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화면의 전개 속도가 나랑 맞는다. 다른 사람들은 느리다고 하는 데, 나에겐 잘 맞는 편이다. 영화나 음악은 상대적인 편이다. 그러니 당연히 취향이 존재하고 타인의 그것을 욕하거나 폄하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장례식장에서 출발한다. 한명의 소년과 한명의 소녀, 한명의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은 이 영화는 죽음에 대한 영화이다. 죽음과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구스 반 산트는 이전의 몇 편의 영화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엘리펀트, 파라노이드 파크, 라스트 데이즈 등은 그런 영화들일 것이다. 
- 그의 작품이력을 쭈욱 살펴보니 어쩌면 맷 데이먼/벤 에플렉과 함께 했던 굿윌헌팅이 가장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엘리엇 스미스가 음악을 맡기도 했던 ...

영화는 3개월 시한부의 소녀인 애나벨과 부모의 죽음으로 3분여동안 죽음을 맛보았던 에녹, 에녹에게 보이는 히로시라는 카미카제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중추는 애나벨과 에녹이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면서 시작한다. 매일 타인의 추도식에 참석해서 그들의 얼굴을 보는 에녹에게서 죽어버린 자들은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듯한 모습들이 나온다. 실제로 에녹은 히로시와의 대화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로시는 그것은 비겁하다는 식으로 에녹에게 이야기를 하고 죽어버린 자에 대해서 존경심같은 것이 없다고 에녹에게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서 재발해버린 암으로 인해서 3개월 시한부를 받은 애나벨은 삶에 대해서 남은 시간 동안에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일들과 시간들을 보내려고 한다. 에녹과 애나벨이 사귀게 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들어진 띠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명의 주요 인물을 보면 마치 죽음에 대한 연결고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명은 이미 죽어버린 유령, 한명은 이제 곧 죽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한명은 잠깐동안의 죽음을 맛본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점에서 고리처럼 연결되어진 하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죽음이 곧 상실이라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기준이라고 보면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히로시의 편지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우리의 어쩌면 순진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부치지 못한 죽기전에 쓰는 편지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에게 고백하는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보다는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하고 스스로롤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전해주는 것은 또한 아니었는가 말이다. 

-뱀다리-
우린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것을 누리려하면 죽음은 좀 더 강력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그냥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멈추어서서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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