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터는 다음 영화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이맥스로 본 첫번째 영화다. 영화비도 비싸긴 하던데 영화 자체와 아이맥스라는 특성이 합쳐져서 잘 어울려진 것 같아서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도 아이맥스는 비싸긴 비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포스터가 바로 위의 포스터가 아닌가 싶다.  허블 망원경(인공위성)을 수리하러 올라간 우주 왕복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다. 


배우로만 보면 원톱으로 산드라 블록이 나오고 초반에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 우주라는 공간이 역설적으로 영화적으로 보면 소재가 제한된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다. 이 말은 무엇이냐면 미지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공간은 열린 공간이지만 그 배경들이 같은 화면들을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즉,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과 함께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아주 우스운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배우가 이 부분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약간의 아쉬움같은 것이 남는다. 그것은 왠지 우주라는 공간적 특성이 배우를 일정 부분 삼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경(우주)이 온통 검은 색이라서 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배경에 좀 더 몰입된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공간에 몰입이 좀 더 된 느낌이었다. - 이게 아이맥스 탓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3D를 좋아하지 않는다. 안경을 쓰고 보는 데다 테크놀러지에 영화의 이야기가 먹혀버린 느낌이 들어서 일 것이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특정한 적대적인 존재도 없고 공간자체가 위협이 된다. 그런데, 이 공간이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기사가 기억이 난다. 우주에서 쓰레기들이 넘쳐나서 이를 피해서 우주 공간에 위성이나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도 큰일이라는 것이다. 이미 지구 궤도는 포화상태로 치달아 있다는 것이다. 이 포화상태와 우주쓰레기를 회피하기 위함과 천체 관측의 원활함을 위해서 허블망원경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허블은 90년도에 궤도에 올려진 이후로 수차레 업그레이드/수리등을 거쳐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이야기는 우주왕복선이 허블을 수리하러 올라가서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과 적대적인 존재가 없이 단지 이야기의 힘으로 전체를 끌어가고 있는 데, 미지의 공간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 등등이 뒤섞여서 인간의 삶에 대한 욕구가 잘 드러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사실 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다른 리뷰에서도 나왔듯이 러시아 위성이 미사일에 맞는 장면과 같은 것을 넣어서 보다 볼거리를 넣어서 자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영화다 보니 과학적인 오류가 당연히 있을 것이지만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는 다른 분들에게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영화는 미지의 것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일부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러가신다면 그 전에 유투브에서 우주정거장 영상(ISS;International Space Staion)을 한번 보시고 가시면 더 좋을 거 같다. 







PS. 아참..어쩌면 허블 망원경은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말처럼 우주에 최대한 근접하여 찍어서 그것을 잘 표현하려는 욕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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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나는 괜찮았다.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유머코드도 좀 있고, 그가 왜 죽을려고 하는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바이올린 소리가 별로라서라기 보다는 그 놈의 사랑이 문제였던 것이다.


짧게 쓰고 싶은데, 이건 그냥 사랑이야기고 그것때문에 죽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다. 그것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남자의 이야기다. 


종반에 가서 느낀 것인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엇갈림과 그리움이 교차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그 불완전한 것이라니 말이다. 이토록 불완전한 것이 왜 세상이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힐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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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윈터바텀의 영화중에서 무엇을 보았나 하고 찾아보니 관타나모로 가는 길 하나를 보았다. 그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에 비해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인 이안, 아내 카렌 그리고 네 아이들, 이안은 마약 밀수로 감옥에 갇혀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카렌이 애들을 새벽에 깨워서 면회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생활에 찌든 카렌의 이야기도 나온다. 좀 더 지쳐가고 힘든 일상들이 이 영화에서 묻어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는 이런 단조로움을 거의 반복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 같은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보면서 중반쯤 지났을 때, 생각했다. 아 제목하고는 정말 잘 매칭이 되는 영화구나 에브리데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판 포스터의 그 문구에는 그다지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랑을 지킨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한국적인 사고로 보건데, 4명의 자녀를 두고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낮에는 마트에서 일하고, 밤엔 펍에서 일하는 주부의 삶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생활인 것이다. 그걸 사랑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좀 무리가 따르는 것이 아닐까? 꼭 사랑이라고 이야길 해야 하나? 난 그렇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별다른 사건도 없고 제목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충격적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좀 안하고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막을 끝가지 보면 네 아이들이 같은 성을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들이 실제 형제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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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스티브 맥퀸의 두번째 영화이다. 첫번째 영화는 헝거였다. 헝거를 잠깐 이야기하자면 IRA에 대한 이야기로 감옥에 투옥되어서 단식 투쟁을 하는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하여 그린 것이었다. 난 이 영화를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본 기억이 있다. 상당히 사회성이 짙은 영화였고 그들의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각주:1]


그에 반해서 이 영화는 다분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는 브랜든이라는 섹스중독자로 나온다.어떻게 보면 외관상으로는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거대 도시의 중심에 살고 있는 여피족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실은 섹스 중독자로서 자신의 집으로 콜걸을 불러서 섹스를 하고 웹캠으로 섹스 채팅을 하는 등의 일을 한다. 물론 원나잇스탠드도 감행하는 그런 인물이다.


이 인물과 캐리 멀리건이 씨씨라는 여동생으로 나오는 데 갑자기 오빠 집에 찾아와서 지내게 해달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갈등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두 사람이라고 보여지는 혹은 남과 녀를 대표하는 성으로 보여지는 이 두 인물이 하나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비슷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외모와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들 말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서 내적으로는 그러한 것에서 오는 공허함같은 것들이 이들에겐 가득하다. 그것이 브랜든에게는 섹스 중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드러나듯이 자극적인 장면들 - 나체, 정사장면들 -도 있지만 그것이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내가 가진 욕구를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죽으려고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좀 불편했던 이유는 마치 이 영화에서 브랜드과 내가 동일시되거나 혹은 씨씨랑 동일시되는 그런 느낌을 좀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두 사람이 실은 하나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상 이야기를 적다가 보니 결국은 둘은 같으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나온 하나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나온 것이 맞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는 살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두 사람이 느끼었던 그런 공허감/허무감을 내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이중성과 그런 것들을 우린 꼭 영화의 제목처럼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잠재된 욕구와 사회적 욕구가 충돌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과연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 어쩌면 감독은 그 반대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주:2]


[각주:3]



  1. 헝거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헝거로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본문으로]
  2. 여기서 갑자기 김두식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는 스스로의 욕망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볼 것을 권장했던 기억이 난다. [본문으로]
  3. 모든 이미지는 다음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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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다음무비


감독은 아주 문제적인 감독 즉, 켄 로치다.

얼마전에는 대처 전 수상이 죽자, 바로 그 장례식을 민영화하라고 했던 그 감독이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오래전의 작품들은 사회성도 짙고 좀 무겁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최근에 보았던 것은 약간 블랙코미디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영화의 느낌이 그랬다. 부적응자를 다루면서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엔젤스 쉐어는 오크통에서 자연증발하면서 사라지는 위스키를 말한다고 한다. 그것은 천사의 몫이라고 말이다.


직업도 없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청년 백수 로비는 폭행 사건에 연루돼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다. 여자친구의 출산으로 아빠가 된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어느 날 사회봉사 교육관의 집에서 난생 처음 몰트 위스키를 맛보게 된 그는 자신이 예민한 후각과 미각을 타고났으며 위스키 감별에 선천적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회봉사를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위스키 시음 행사에 갔다가 수십억을 호가하는 세계 최고의 위스키 경매가 곧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타고난 위스키 감별 재능을 이용해 일생일대의 인생 반전을 계획하는데…


위 줄거리는 다음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간단하게 보자면 사회봉사 시간에 만난 4명의 사회부적응자가 위스키를 훔치러 가는 것이다. 커다란 오크통에서 몇병만 훔쳐서 그걸 파는 것이다. 그걸 먹고 싶은 부자가 이들에게서 산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 이들은 완전한 사회 부적응자다. 도둑질에 싸우고, 헛소리나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말이다. 천사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사회 부적응자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 오크통 하나의 엄청난 금액을 주고 사서 마시는 사람과 단지 그걸 조금 빼서 팔고 살아가려는 것은 천사의 몫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 가 싶다.


주인공을 맡았던 폴 브래니건은 실제 동네 건달이었고 영화 출연도 처음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이를 발굴해낸 감독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배우가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역이랑 밀착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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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무비


개인적으로 사실 놀란제작이라서 나름의 기대를 품고 갔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감독인 잭 스나이더의 300을 케이블에선 봤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지라 반신반의를 하면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줄거리 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수퍼맨의 최초 등장과 물려져 있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다분히 기존의 수퍼맨과 달리 그 영화를 그 줄기에서 다시 재해석해내고자 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마치 재부팅(reboot)시킨 것과 같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크리스토퍼 놀란 제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블록 버스터 영화를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가끔 보기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으나 그중에서 기억나는 몇몇의 영화들은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배트맨 시리즈인데, 그중에서 팀 버튼이 연출한 것과 놀란이 연출한 다크 나이트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히스레저의 유작이기도 한 다크 나이트는 그 영역상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과연 인간이 어떤 존재로 탄생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 여파로 이 영화도 그러한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러 갔었다.


그러한 기대는 영화가 중반정도 전개된 이후에 거의 없어져 버렸다. 감독인 스나이더의 300의 이야기는 사실 그네들이 영화에 표현한 페르시아군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괴물 혹은 인간성을 상실한 기계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어이보면 다분히 백인종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시아인(굳이 여기에 오리엔탈리즘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다)이 어떤지 보여진다.  조드가 바라보는 지구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나오고 있는 데, 다분히 우생학적인 측면과 적자생존/약육강식으로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어릴 때는 그냥 그보다는 우리랑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 하늘을 나는 것이 신기했다고나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의 중반이후에 보여지는 액션신들이 전개상 어쩔수 없다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게 이야기들을 먹어버릴 만큼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스케일은 무진장 크게 나오긴 하더라만. 거기에 개인적으로 자라나게 만든 지구인들을 더 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이해가 안되기는 한다. 스스로 크립톤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니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은 외계인이 아닌가 말이다.


영화의 전개상 어쩔수없이 억지스럽게 우주선을 찾고 자신을 알게 되고 조드를 만나는 부분은 수퍼맨이 최초에 영화로 등장한 부분에서 가지고 온 것이니 더 할말은 없을 수 있으나 차라리 그 조차도 과감하게 도려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이왕 리부팅식으로 할거면 이야기를 다르게 전개해도 되지 않을까 말이다.
영화에서 초인들이 겨루는 격투신은 그 스케일면과 실사면에서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것이 결국 약간의 기대를 결국은 약간의 실망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내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너무 큰 기대들을 하고서 본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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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는 남북전쟁의 종반에서 남북간의 종전선언과 실질적인 노예 해방선언을 위한 헌법수정을 위하여 의회와 행정부의 수장인 링컨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내가 놀라웠던 부분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였다. 분장이 아주 잘 되었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발성이나 연기등은 이제 절정이 아닌가 한다. 전에 보았던 데어 윌비 블러드에서와 다른 역할과 느낌이어서 놀라웠다.


큰 폭의 사건이나 변화는 없지만 그에 반해서 시대적 사건 변화에 주목해볼만하다.

실제 유색인종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링컨이 죽은지 백년이 지난 후인 196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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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포스터에 왜 박성웅은 없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황정민과 박성웅의 색깔이 가장 강했던 거 같은데 말이다. 무간도의 한국식버전같다는 느낌이었지만.. 약간은 식상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정재는 약간 걷도는 느낌이 나에게는 들었다. 그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황정민/최민식/박성웅에 비해서 색이 덜 드러나는 역할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냥 난 박성웅의 발견이라고 하고 싶다. 또 다른 악역 배우의 발견이라고 할까..내가 황정민을 눈여겨 보게 된 것은 달콤한 인생에서부터였던 거 같다, 그와 비슷한 느낌이다. 



여전하다고 느낀 것은 역시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사회적으로 식자 계층이라고 불리는 남자들의 찌질함이다. 그리고 그게 불편한 것은 역시 실제로 남자들이 그런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불륜이야기도 아주 단골로 나오고 말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장자의 나비의 꿈이야기가 생각났다. 교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진짜 이야기인지 아니면 꿈인지 모르게하는 그 교묘함.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가 무엇이냐면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깨어보니 그냥 나인데 나비가 꿈꾸는 나인지, 그냥 내가 꾼 꿈에서 나비로 변한 것인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 


현실과 꿈을 구분못하게 만드는 아주 교묘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허무적인데 이걸 이야기에 차용하면 아주 교묘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영화의 막판에 이렇게 은유나 비틀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보고나서 좀 힘들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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