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 이것도 저것도 아닌.,..
휴일날 집에서 조용히 IPTV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에도 좀 그렇고 해서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약간 지난 영화를 이렇게 보게 되니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좋은 면이 있다.
일단 이 영화는 약간은 괴기스럽다. 이야기의 주제 자체가 괴기스럽다는 말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 솔로된 사람은 호텔(?)로 가서 솔로인 사람들과 45일 정도 지내면서 그 속에 같이 살 이성을 만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이 상황에서 개가 된 형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오는 그는 그냥 혼자 살기를 원해서 숲속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 커플이 되는 사람들은 보면 상대방에 나를 맞추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동물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인간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덕분이다
그 덕분에 위선/위악을 다들 행한다. 사실 숲속으로 도망친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그안에서 커플로 살려는 사람들을 별종 혹은 처리의 대상으로 생각을 한다. 따라서, 내 생각엔 양쪽 다 상대방을 용인하기 보다는 받아들이지 못할 대상 혹은 거부의 대상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확하게 인식이 된 상태로 보인다.
숲속에 도망쳐서 지내는 사람들끼리중에서 다시 이성에 호감을 느껴서 커플이 되고 이들이 결국엔 숲속에서 도망쳐서 도시로 가서 살려고 한다.
그런데 도시의 인간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같이 살아가려는 상대방에 맞도록 핸디캡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도시 속의 삶에서의 기준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가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사회에서 거부를 당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욕망하고 그것을 닮아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하나의 개체로 존중받기 보다는 난 너와 같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살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와 같고 난 다르지 않으니 날 받아달라고 말이다.
유전이론에서는 하나의 작은 돌연변이가 유전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이 자연에 적합하게 만들고 좀 더 큰 변화를 이끌어 내어서 진화를 하도록 만들게 만든다고 하였다. 작은 돌연변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발전하고 진화하고 나아지고 있는 존재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