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켄 로치의 세번째 영화이다. 두편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랜드 앤 프리덤이었다. 앞서 본 그의 두편의 영화에서는 아주 다분히 역사성과 시대성이 배경이 되었다. 그것은 아일랜드 독립과 스페인 내전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최근에 스페인 내전 서적을 읽고 있기도 하다.
1969년작인 이 영화 케스는 새로 생긴 영화의 전당에서 보았는데, 극장이 전에 있던 시네마 테크보다 훨씬 낫더라는 생각이 든다. 멀티플렉스처럼 만들어놓았는데, 개인적으로 의자가 편해지고 스크린이 더 커진거 같아서 좋았다. 물론 상영관이 증가하면서 담당 프로그래머는 죽어나고 있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말이다.
영화를 좀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좋아하게 된 두 감독이 있는 데, 켄 로치는 그중의 하나다.
- 나머지 하나는 구스 반 산트이다. 아이다호를 만들고, 굿윌헌팅, 라스트 데이즈를 감독했던 그 감독말이다.
켄 로치의 영화에서는 전에 보았던 두편에서 시대성이 아주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배경자체가 시대적인 요소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 탄광에서 일하는 형과 같이 사는 빌리는 거의 미래가 확정적인 상태이다. 광부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동네에서 굴러먹는 그저그런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가난해서 학교에서도 체육복을 살 수 없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한다. 여기서 빌리는 어린 매를 구해서 매 훈련에 대한 책을 훔치고 매를 훈련시킨다. 이 매의 이름이 케스였다. 결과적으로는 이 매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게 되지만 동네에서 왕따당하고 왜소한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면서 애정을 갖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서 몰입한 대상이 그 대상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장면에서 매의 훈련 장면을 보기 위해서 찾아온 선생과 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빌리가 매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에서 자신과 매를 그 부분에서 동일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는 그냥 매는 매이고 길들여지지 않으며 훈련시킬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빌리가 매와 같이 다니면 길들여진 것이냐고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이 빌리의 의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런 루저정신같은 것이 영국내의 노동자층의 기본 정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영화에서 학교교사들의 발음은 약간씩 들리는 데, 빌리가족과 주변인물들의 발음은 거의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이 영화 스코틀랜드 영화인가? 아일랜드 영화인가? 왜 단어 하나도 모르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어쩌면 이것조차도 묵시적인 계급을 나누는 어떤 장치같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좀 웃긴 장면은 체육시간에 축구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교사가 자기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 맨유라고 하면서 상대방은 머할래 묻더니 스퍼스 한다고 하고, 패널티 아닌거 같은데 자기가 심판이라서 그냥 패널티주고 직접 차면서 안들어가니 다시 차고 결국 지니깐 골키퍼였던 빌리를 괴롭힌다. 그냥 괴롭히는 장면이전까지는 좀 웃겼다. 빌리를 샤워실에 넣고 추운 날씨에 찬물로 틀어대는 것만 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