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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10년전 일을 생각해본다. 난 집착했었던 것일까?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랬던 거 같다. 난 혼동했던거 같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그것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한다. 어쩌면 난 다시 집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면해 있다. 2009. 8. 4.
채영주 - 바이올린 맨 바이올린맨 - 채영주 지음/문학과지성사 채영주의 소설을 읽은 것은 군대에 있을 무렵, 한창 지하벙커에서 몰래 책읽기에 탐독하던 때이다. 이때에는 휴가자들이 사온 책을 먼저 검열한 후에 올려보내곤 했다. 그때의 채영주의 소설 [크레파스]를 읽고 난 첫 느낌은 '이거 영화만들면 참 좋겠다'였다. 그리고, 바이얼린 맨을 읽고 난 후의 느낌도 그때와 비슷하다. (바이얼린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만들기 위한 과정과 그 바이올린을 사서 쓰는 사람이 잘 쓰는 것일 것이다. 결국은 바이얼린 만드는 사람과 나, 그리고 방에 세들어 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 소설은 묘사하고 있다. 좁지만 다양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채영주는 상황의 묘사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마치 읽은 사람에게 영상을 보.. 2009. 8. 4.
부석사의 겨울 영주에 계신 사진 찍으시는 분에게서 아주 오래전에 허락을 받은 후에 가지고 온 것이다. 이 사진 볼때마다 생각하는 것인데 난 가을에만 부석사를 갔었고 눈이 온 겨울에는 가지 않았던 듯하다. 2009. 8. 4.
바다 누군가는 바다에 생각을 묻고 여름의 끝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바다를 가끔 보러 가는 이유는 수평선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끝을 보면 그 끝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알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그런 느낌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호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생은 모호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어가 가지는 언어의 모호함은 때로는 좋지만 좋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것은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게 힘들게 만든 모호함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호함은 스스로를 조금씩 가라앉게 만드는 아주 특이한 것이다. 2009. 8. 1.
양군의 밴드..'라플레시아'의 'Love is..' 백곰이 한컷만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1 인 2009. 7. 1.
살면서... 피 토하면서 살아본적있나.. 그럴 때 나를 지켜준 것은 피붙이뿐이었다. 부모님과 동생들.. 문득 TV를 보면서 양희은이 나왔다. 아펐을 때..죽음에 이르렀을 때 주변정리가 되더라고.. 난 관계맺기가 겁난다. 순간순간으로만 남기고 싶다. 관계의 지속은 어려운 일인 것이다. 2009. 6. 27.
탱고 - 송영훈 공연 아시는 분의 도움으로 탱고 공연을 보게 되었다. 첼리스트 송영훈과 피아졸라밴드의 피아니스트 파블로 징어, 클라리넷의 호세 프랑크 바예스테르가 같이 연주하는 탱고 공연이었다. 서울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오신 탱고 댄서 두 분이 나오셨지만 지방공연에선 국내 탱고 댄서 두분이 나오셔서 곡에 맞추어서 탱고를 추셨다. 그런데, 이 탱고를 보면서 느낀 점은 현란하면서도 유연한 발놀림이라는 것이다. 탱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EBS의 동영상이 빠를 듯하다.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많았고 탱고 댄서분들까지 나오셔서 상당히 기억에 남을만한 공연이었다. 2009. 6. 21.
나쓰메 소세키 - 마음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이레 이 책은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친구를 저버리고 그를 간접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스스로를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면서 나아가서 인간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과연 스스로를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가? PS. 나쓰메의 다른 소설들을 더 읽어볼 요량으로 있다. 2009. 6. 21.
고백 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난 상처가 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만들었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이지만 나또한 나에게 내재된 부분에 대해서 놀랐고 그것으로 인해서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 두려움은 곧 관계의 회피이거나 자신감 결여로 이어졌다. 난 아직도 두려운 것이다. 다시 시작하겠단 생각은 있지만 때론 이 상황에서 도피하고픈 욕구도 있다. 그것이 나를 다시금 혼란에 빠뜨린다. 누구나 다 상처가 있다. 나에게도 가족사적인 상처도 있고, 25살의 내가 겪었던 죽고만 싶었던 상처도 있다. 때론 내가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통받을 때..난 스스로 생각한다. "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라고 말이다. 고통은 때론 나에게 살아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 고통을 느끼려 일부러 나를 학대.. 2009.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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