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는 전년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감옥에서 세상을 배운 19살 소년 혹은 청년의 이야기이다.
19살 고아인 소년이 감옥을 가게 된다. 6년형을 받은 그가 감옥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중에 감옥 갱 두목에게서 누군가를 죽이면 뒤를 봐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죽이게 된다.
그것의 대가로 그 두목의 부하가 되면서 감옥에서 글을 배우고 암흑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스스로가 성장하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결국은 소년은 그 곳에서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기반을 얻고서 출소하게 된다. 조직과 돈을 말이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은 두명이다. 위의 그림에도 있듯이 말리크라는 주인공과 세자르라는 감옥 갱 두목이 그들이다. 이들은 처음 주종의 관계로 시작하여 결국에는 말리크가 세자르의 모든 것을 다 잘라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그런 형태이다.
즉, 감옥에서의 세자르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말리크에게 가르쳐주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결국은 말리크가 배신한다는 것을 왜 세자르는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아랍계라고 무시하고 욕하면서도 결국에는 필요에 의해서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세자르는 말리크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동질감을 은연중에 느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나의 비약이다. 6년간의 감옥에서 성장하면서 그들의 거래선과 거래방법 등을 알고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말리크의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목이라면 어느정도에서 더러운 아랍놈이라고 하면서 결국에는 믿고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을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적절한 긴장감과 전개속도, 카메라의 느낌들이 좁은 감옥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내적인 문제인 아랍계와 코르시카계 갱등 문제부터 인종차별적인 문제들까지 배경으로 삼고서 이 영화는 출발한 것이다. 그러한 내재적인 문제를 바탕으로 전개함으로서 영화속 인물들의 몰입도를 증가시킨 것이라고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감독의 의도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의구심이 일었던 것은 말리크가 살해한 레예브라는 인물이 말리크를 감방에서 같이 산다는 영화의 장면이다. 물론 일정 순간 이후에는 보이지 않지만 통상적인 경우에는 말리크가 상당히 그에 대해서 괴로워해야 하는 데 어느 순간에 그를 받아들이고 그냥 같이 산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레예브라는 인물도 말리크를 괴롭히기 보다는 마치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이 점이 난 좀 혼란스럽다. 왜인가? 왜? 하나는 죄책감에 그를 보는 것이 두려워야하고 하나는 죽일 듯이 덤벼들어야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상식의 선이었는 데 왜 그들은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것인가? 그냥 원래 그것은 친구인 것인지? 내가 죽인 자와 나는 원래부터 친구였다는 것인지?
원래부터 삶과 죽음은 친구였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지만 실은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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