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 반 산트의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화면의 전개 속도가 나랑 맞는다. 다른 사람들은 느리다고 하는 데, 나에겐 잘 맞는 편이다. 영화나 음악은 상대적인 편이다. 그러니 당연히 취향이 존재하고 타인의 그것을 욕하거나 폄하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장례식장에서 출발한다. 한명의 소년과 한명의 소녀, 한명의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은 이 영화는 죽음에 대한 영화이다. 죽음과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구스 반 산트는 이전의 몇 편의 영화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엘리펀트, 파라노이드 파크, 라스트 데이즈 등은 그런 영화들일 것이다.
- 그의 작품이력을 쭈욱 살펴보니 어쩌면 맷 데이먼/벤 에플렉과 함께 했던 굿윌헌팅이 가장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엘리엇 스미스가 음악을 맡기도 했던 ...
영화는 3개월 시한부의 소녀인 애나벨과 부모의 죽음으로 3분여동안 죽음을 맛보았던 에녹, 에녹에게 보이는 히로시라는 카미카제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중추는 애나벨과 에녹이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면서 시작한다. 매일 타인의 추도식에 참석해서 그들의 얼굴을 보는 에녹에게서 죽어버린 자들은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듯한 모습들이 나온다. 실제로 에녹은 히로시와의 대화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로시는 그것은 비겁하다는 식으로 에녹에게 이야기를 하고 죽어버린 자에 대해서 존경심같은 것이 없다고 에녹에게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서 재발해버린 암으로 인해서 3개월 시한부를 받은 애나벨은 삶에 대해서 남은 시간 동안에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일들과 시간들을 보내려고 한다. 에녹과 애나벨이 사귀게 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들어진 띠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명의 주요 인물을 보면 마치 죽음에 대한 연결고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명은 이미 죽어버린 유령, 한명은 이제 곧 죽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한명은 잠깐동안의 죽음을 맛본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점에서 고리처럼 연결되어진 하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죽음이 곧 상실이라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기준이라고 보면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히로시의 편지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우리의 어쩌면 순진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부치지 못한 죽기전에 쓰는 편지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에게 고백하는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보다는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하고 스스로롤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전해주는 것은 또한 아니었는가 말이다.
-뱀다리-
우린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것을 누리려하면 죽음은 좀 더 강력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그냥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멈추어서서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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