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 8점
박평종 지음/달콤한책


기술의 발전에 최근 들어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이 아마도 가전제품들과 PC,스마트폰, 사진기일 것이다.


이 책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인데 크게 보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주목할만한 몇몇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으며 이후에 한국에서의 사진에 대한 역사, 마지막으로 몇 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사진가의 시선, 작가의 윤리

즐거운 환영: 한성필 <파사드>
‘빛그림’으로 환생한 오브제 식물: 구성수 <포토제닉 드로잉>
생명주권을 빼앗긴 야생인류의 생태학: 노순택 <좋은, 살인>
무기력한 국가의 가련한 초상: 강용석 <동두천 기념사진>에서 <한국전쟁 기념비>까지
기호의 경연(競演): 노상익 <캔서>
아름다움에 관한 어두운 진실: 김규식 <플라워즈>에서 <카니발>까지
‘우연’이 인도해준 세계의 입구: 최봉림 <우연의 배열>

2. 우리 사진의 풍경과 역사

1920~1930년대, 사진가들은 근대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문화 다원주의 시대의 한국 사진, 어디로 갈 것인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진의 지형도
분단문제, 특수한 사안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 변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향방
칠실파려안(漆室??眼)에 비친 다산 시대의 자연

3.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아마추어 사진가의 미래
사진으로 축소된 세계: 여행사진의 탐욕
B급 작가에 대한 생각
유명 사진전, 언제까지 수입만 할 것인가?
포토저널리즘의 미래
중간 이상의 예술
사진상(賞)과 작가 지원 제도의 문제점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사진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진과 초상권
사진저작권과 소유권
‘타인의 고통’과 사진 찍기의 괴로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들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진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지 찍는다는 것이 아닌 만든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그것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실적인 문제들, 그리고 나아갈 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틀이라는 것의 속성상 무한한 복제가 가능하고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진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다가가도록 만들고 욕망의 대상으로 보이도록 하게 만들었으며 이제 테크닉이 아닌 예술의 반열에 오른 이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간이상의 예술이라는 부분에서 부르디외의 중간예술이라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즉, 상층계급으로 가지 못한 중간층이 그들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사진을 중간예술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욕망을 충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중간층이 만들어낸 사진이 예술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하여 상층계급은 사진을  예술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구매하여 집에 걸어놓게 만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 얼마전 어느 프로에서 강남의 부유층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리라.


또한, 포토 저널리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진이 가지는 고발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찍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구호의 손길을 보낼 것인가 말이다.

이 부분에서도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그냥 단순히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비열하게 그것을 전시하고 윤리적으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니깐 찍히는 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된다. 책의 중반에도 나온 바와 같이 같은 피사체를 두고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며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문제인 것이다.


일련의 연작들을 오랜동안 해온 사진가에게 사회적으로 혹은 다수의 동종업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마도 그들이 그것에만 천착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것보다는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그들이 오랜동안 바닥에서 해온 것을 그들도 잘 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의 일부분의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 대상으로 꼽은 그 두 사람은 다분히 한국사회에서는 반학벌주의에 스스로 독학하여 사진을 익히고 죽을 때가지 그것 하나로 사진을 찍은 사람인데 어쩌면 부적절한 예를 들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진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고 사진으로 밥벌이하겠다 싶은 사람 혹은 사진가로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사람은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유명한 두 권의 다른 책도 더불어서 말이다.

- 수잔 손택 : 사진에 대하여

- 필립 퍼키스: 사진 강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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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tliberty.tistory.com BlogIcon navillera 2013.12.29 0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의하기 어렵다는 시각 중의 1명은, 최민식 작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말하는것 같군요. 저도 약간 놀랐다는. 사실 나는 이 저자의 의견에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는. 왜냐하면 최작가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그래도 글이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었고, 수준이 괜찮은 편이어서 그럭저럭 잘 읽었던 기억이.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8점
김정후 지음/돌베개


이 책은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유럽에서 기존의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거나 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그 역할을 변경하는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영국 Tate Modern 박물관 1층 터빈실 - 출처:http://www.flickr.com/photos/pmorgan/2472654/ 저자: http://www.flickr.com/photos/pmorgan/


프롬나드 플랑테_멈춘 철로 위에 일상이 펼쳐지다 | 파리, 프랑스
트루먼 브루어리_예술가 마을로 변신한 양조장 | 런던, 영국
가소메터 시티_가스 저장고 안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다 | 빈, 오스트리아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센터_전쟁의 상흔 위에 탄생한 미디어아트의 메카 | 카를스루에, 독일
카타야노카 호텔_감옥이 변하여 호텔이 되다 | 헬싱키, 핀란드
카이샤 포럼_발전소 변신의 신화를 이어가다 | 마드리드, 스페인
와핑 프로젝트_수력발전소에서 유쾌한 상상력의 아지트로 | 런던, 영국
뒤스부르크 환경공원_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제철소 | 뒤스부르크, 독일
촐퍼라인_문 닫은 탄광에서 문화를 생산하다 | 에센, 독일
하펜시티_도시 안에 태어난 또 하나의 도시 | 함부르크, 독일
베스터 가스공장 문화공원_친환경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가스공장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볼로냐 문화예술 지구_제빵공장은 미술관으로, 도축장은 문화예술센터로 | 볼로냐, 이탈리아
비미시 박물관_있는 그대로의 탄광촌으로 박물관을 만들다 | 더럼, 영국
취리히 웨스트_슬럼가 공장 지대,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다 | 취리히, 스위스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건설된 산업시설들이다. 발전소나 공장같은 것이 대부분인데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이런 건물들은 철거를 하고 그 위에 수익성높은 건물들을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이런 건물들은 구 도심에 근접해서 있어서 교통만 해결되면 아주 경제성있는 부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이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정책입안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대부분 낡은 이 건물들의 보존가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보존 건물로 지정하고 부수거나 인위적인 변경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유럽의 내재적인 전통에 기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가장 현대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6.25이후에 거의 모든 유적지가 파괴되고 모든 것을 새로 건설해야 하는 상황을 지금까지 겪어왔다.이러한 상황은 건물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땅에 대한 애착만을 증폭시켜서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땅에 대한 강한 애착은 농사를 지어서 유지하여온 사회성에 기대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공간을 분할하고 안에서 살아가는 건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애착을 작게 가지게 되었다. - 그런데, 이게 6.25이후의 근대성에 기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시각도 사실 약간의 문제가 있어보이는 것이 유럽은 2차 대전이후에 거의 대부분 폐허가 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보수해서 사용한 것이 사실이다. - 영화 피아니스트같은 것이나 폭격후의 영국, 독일 사진들을 보면 이건 6.25전후의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의 의식과 유럽인이 오래된 건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이 약간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여간, 유렵의 관료들이 이 부분에서 우리와는 많은 시각차를 보이고 있으며 또 놀라운 것은 그들이 단순히 산업용도를 건설하면서 기능적인 측면만 고려를 해서 건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탄약공장이 미디어 아트 센터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건물이 이미 외관상으로는 단순히 탄약공장의 기능적인 측면만 고려해서 초기에 건설되지 않았다는 의미한다. 설계시점에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를 하고 그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반영하여 후세에도 그 건물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것은 우리가 현 시점에서 건축에 대해서 가지는 여러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높고 화려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다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유럽의 이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은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나 건축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100년후에도 남을 것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철거를 하면 편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재활용하고 재창조하기 위해서 고민을 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수력발전소의 설비나 기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일부 보수만 해서 공연장과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작업인 와핑프로젝트(http://www.thewappingproject.com)나 쇠락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성격인 함부르크의 하펜시티(http://www.hafencity.com)는 기존의 건물들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이러한 유럽의 여러가지 재생/재활용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데, 내용에 대해서 잘 정리가 되어져 있어서 만족스러운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 해당 프로젝트들의 사진이 글과 같이 보여주었으면 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사진의 크기상 그렇게 못하고 별도의 페이지에 넣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편집상 해당 사진과 글이 바로 연결되어서 보이지 않아서 약간 따로 놀은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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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tliberty.tistory.com BlogIcon navillera 2013.12.28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건물을 소비의 목적으로만 보는 반면에 서구는 건물을 생산을 위한 주체도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서구는 산업혁명 이후 지나친 문화적 우월감(!)의 발로로 인하여 자신들이 만든 무언가에 대해서는(그게 건물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든)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근대화의 과정을 대외침략과 식민지로 이어오는 굴종의 역사를 함께 겪으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자연스레 학습되어 오늘에 이르는것 같고요. 둘 다 극단적인 부분이 있어서 잘못된 시각이겠지요. 분명한 것은 서구의 '자신감'과 '유연한 사고'는 분명 배워야 할 점이 있는듯 보입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이렇게 즐비한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하지요, 사람과 건축이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이 포스터는 다음 영화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이맥스로 본 첫번째 영화다. 영화비도 비싸긴 하던데 영화 자체와 아이맥스라는 특성이 합쳐져서 잘 어울려진 것 같아서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도 아이맥스는 비싸긴 비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포스터가 바로 위의 포스터가 아닌가 싶다.  허블 망원경(인공위성)을 수리하러 올라간 우주 왕복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다. 


배우로만 보면 원톱으로 산드라 블록이 나오고 초반에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 우주라는 공간이 역설적으로 영화적으로 보면 소재가 제한된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다. 이 말은 무엇이냐면 미지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공간은 열린 공간이지만 그 배경들이 같은 화면들을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즉,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과 함께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아주 우스운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배우가 이 부분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약간의 아쉬움같은 것이 남는다. 그것은 왠지 우주라는 공간적 특성이 배우를 일정 부분 삼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경(우주)이 온통 검은 색이라서 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배경에 좀 더 몰입된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공간에 몰입이 좀 더 된 느낌이었다. - 이게 아이맥스 탓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3D를 좋아하지 않는다. 안경을 쓰고 보는 데다 테크놀러지에 영화의 이야기가 먹혀버린 느낌이 들어서 일 것이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특정한 적대적인 존재도 없고 공간자체가 위협이 된다. 그런데, 이 공간이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기사가 기억이 난다. 우주에서 쓰레기들이 넘쳐나서 이를 피해서 우주 공간에 위성이나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도 큰일이라는 것이다. 이미 지구 궤도는 포화상태로 치달아 있다는 것이다. 이 포화상태와 우주쓰레기를 회피하기 위함과 천체 관측의 원활함을 위해서 허블망원경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허블은 90년도에 궤도에 올려진 이후로 수차레 업그레이드/수리등을 거쳐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이야기는 우주왕복선이 허블을 수리하러 올라가서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과 적대적인 존재가 없이 단지 이야기의 힘으로 전체를 끌어가고 있는 데, 미지의 공간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 등등이 뒤섞여서 인간의 삶에 대한 욕구가 잘 드러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사실 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다른 리뷰에서도 나왔듯이 러시아 위성이 미사일에 맞는 장면과 같은 것을 넣어서 보다 볼거리를 넣어서 자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영화다 보니 과학적인 오류가 당연히 있을 것이지만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는 다른 분들에게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영화는 미지의 것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일부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러가신다면 그 전에 유투브에서 우주정거장 영상(ISS;International Space Staion)을 한번 보시고 가시면 더 좋을 거 같다. 







PS. 아참..어쩌면 허블 망원경은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말처럼 우주에 최대한 근접하여 찍어서 그것을 잘 표현하려는 욕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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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나는 괜찮았다.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유머코드도 좀 있고, 그가 왜 죽을려고 하는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바이올린 소리가 별로라서라기 보다는 그 놈의 사랑이 문제였던 것이다.


짧게 쓰고 싶은데, 이건 그냥 사랑이야기고 그것때문에 죽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다. 그것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남자의 이야기다. 


종반에 가서 느낀 것인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엇갈림과 그리움이 교차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그 불완전한 것이라니 말이다. 이토록 불완전한 것이 왜 세상이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힐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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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윈터바텀의 영화중에서 무엇을 보았나 하고 찾아보니 관타나모로 가는 길 하나를 보았다. 그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에 비해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인 이안, 아내 카렌 그리고 네 아이들, 이안은 마약 밀수로 감옥에 갇혀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카렌이 애들을 새벽에 깨워서 면회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생활에 찌든 카렌의 이야기도 나온다. 좀 더 지쳐가고 힘든 일상들이 이 영화에서 묻어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는 이런 단조로움을 거의 반복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 같은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보면서 중반쯤 지났을 때, 생각했다. 아 제목하고는 정말 잘 매칭이 되는 영화구나 에브리데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판 포스터의 그 문구에는 그다지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랑을 지킨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한국적인 사고로 보건데, 4명의 자녀를 두고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낮에는 마트에서 일하고, 밤엔 펍에서 일하는 주부의 삶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생활인 것이다. 그걸 사랑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좀 무리가 따르는 것이 아닐까? 꼭 사랑이라고 이야길 해야 하나? 난 그렇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별다른 사건도 없고 제목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충격적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좀 안하고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막을 끝가지 보면 네 아이들이 같은 성을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들이 실제 형제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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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스티브 맥퀸의 두번째 영화이다. 첫번째 영화는 헝거였다. 헝거를 잠깐 이야기하자면 IRA에 대한 이야기로 감옥에 투옥되어서 단식 투쟁을 하는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하여 그린 것이었다. 난 이 영화를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본 기억이 있다. 상당히 사회성이 짙은 영화였고 그들의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각주:1]


그에 반해서 이 영화는 다분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는 브랜든이라는 섹스중독자로 나온다.어떻게 보면 외관상으로는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거대 도시의 중심에 살고 있는 여피족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실은 섹스 중독자로서 자신의 집으로 콜걸을 불러서 섹스를 하고 웹캠으로 섹스 채팅을 하는 등의 일을 한다. 물론 원나잇스탠드도 감행하는 그런 인물이다.


이 인물과 캐리 멀리건이 씨씨라는 여동생으로 나오는 데 갑자기 오빠 집에 찾아와서 지내게 해달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갈등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두 사람이라고 보여지는 혹은 남과 녀를 대표하는 성으로 보여지는 이 두 인물이 하나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비슷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외모와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들 말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서 내적으로는 그러한 것에서 오는 공허함같은 것들이 이들에겐 가득하다. 그것이 브랜든에게는 섹스 중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드러나듯이 자극적인 장면들 - 나체, 정사장면들 -도 있지만 그것이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내가 가진 욕구를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죽으려고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좀 불편했던 이유는 마치 이 영화에서 브랜드과 내가 동일시되거나 혹은 씨씨랑 동일시되는 그런 느낌을 좀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두 사람이 실은 하나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상 이야기를 적다가 보니 결국은 둘은 같으 어머니 혹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나온 하나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나온 것이 맞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는 살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두 사람이 느끼었던 그런 공허감/허무감을 내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이중성과 그런 것들을 우린 꼭 영화의 제목처럼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잠재된 욕구와 사회적 욕구가 충돌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과연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 어쩌면 감독은 그 반대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주:2]


[각주:3]



  1. 헝거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헝거로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본문으로]
  2. 여기서 갑자기 김두식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는 스스로의 욕망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볼 것을 권장했던 기억이 난다. [본문으로]
  3. 모든 이미지는 다음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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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다음무비


감독은 아주 문제적인 감독 즉, 켄 로치다.

얼마전에는 대처 전 수상이 죽자, 바로 그 장례식을 민영화하라고 했던 그 감독이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오래전의 작품들은 사회성도 짙고 좀 무겁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최근에 보았던 것은 약간 블랙코미디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영화의 느낌이 그랬다. 부적응자를 다루면서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엔젤스 쉐어는 오크통에서 자연증발하면서 사라지는 위스키를 말한다고 한다. 그것은 천사의 몫이라고 말이다.


직업도 없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청년 백수 로비는 폭행 사건에 연루돼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다. 여자친구의 출산으로 아빠가 된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어느 날 사회봉사 교육관의 집에서 난생 처음 몰트 위스키를 맛보게 된 그는 자신이 예민한 후각과 미각을 타고났으며 위스키 감별에 선천적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회봉사를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위스키 시음 행사에 갔다가 수십억을 호가하는 세계 최고의 위스키 경매가 곧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타고난 위스키 감별 재능을 이용해 일생일대의 인생 반전을 계획하는데…


위 줄거리는 다음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간단하게 보자면 사회봉사 시간에 만난 4명의 사회부적응자가 위스키를 훔치러 가는 것이다. 커다란 오크통에서 몇병만 훔쳐서 그걸 파는 것이다. 그걸 먹고 싶은 부자가 이들에게서 산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 이들은 완전한 사회 부적응자다. 도둑질에 싸우고, 헛소리나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말이다. 천사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사회 부적응자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 오크통 하나의 엄청난 금액을 주고 사서 마시는 사람과 단지 그걸 조금 빼서 팔고 살아가려는 것은 천사의 몫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 가 싶다.


주인공을 맡았던 폴 브래니건은 실제 동네 건달이었고 영화 출연도 처음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이를 발굴해낸 감독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배우가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역이랑 밀착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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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무비


개인적으로 사실 놀란제작이라서 나름의 기대를 품고 갔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감독인 잭 스나이더의 300을 케이블에선 봤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지라 반신반의를 하면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줄거리 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수퍼맨의 최초 등장과 물려져 있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다분히 기존의 수퍼맨과 달리 그 영화를 그 줄기에서 다시 재해석해내고자 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마치 재부팅(reboot)시킨 것과 같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크리스토퍼 놀란 제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블록 버스터 영화를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가끔 보기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으나 그중에서 기억나는 몇몇의 영화들은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배트맨 시리즈인데, 그중에서 팀 버튼이 연출한 것과 놀란이 연출한 다크 나이트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히스레저의 유작이기도 한 다크 나이트는 그 영역상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과연 인간이 어떤 존재로 탄생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 여파로 이 영화도 그러한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러 갔었다.


그러한 기대는 영화가 중반정도 전개된 이후에 거의 없어져 버렸다. 감독인 스나이더의 300의 이야기는 사실 그네들이 영화에 표현한 페르시아군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괴물 혹은 인간성을 상실한 기계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어이보면 다분히 백인종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시아인(굳이 여기에 오리엔탈리즘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다)이 어떤지 보여진다.  조드가 바라보는 지구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나오고 있는 데, 다분히 우생학적인 측면과 적자생존/약육강식으로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어릴 때는 그냥 그보다는 우리랑 똑같이 생긴 외계인이 하늘을 나는 것이 신기했다고나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의 중반이후에 보여지는 액션신들이 전개상 어쩔수 없다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게 이야기들을 먹어버릴 만큼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스케일은 무진장 크게 나오긴 하더라만. 거기에 개인적으로 자라나게 만든 지구인들을 더 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이해가 안되기는 한다. 스스로 크립톤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니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은 외계인이 아닌가 말이다.


영화의 전개상 어쩔수없이 억지스럽게 우주선을 찾고 자신을 알게 되고 조드를 만나는 부분은 수퍼맨이 최초에 영화로 등장한 부분에서 가지고 온 것이니 더 할말은 없을 수 있으나 차라리 그 조차도 과감하게 도려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이왕 리부팅식으로 할거면 이야기를 다르게 전개해도 되지 않을까 말이다.
영화에서 초인들이 겨루는 격투신은 그 스케일면과 실사면에서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것이 결국 약간의 기대를 결국은 약간의 실망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내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너무 큰 기대들을 하고서 본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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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주인공의 실제모델로 알려진 인물을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아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아닌 분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이야기는 그 실제모델이 된 인물이 설립한 자동차회사에서 출발한다.


어제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주목할만한 기사 하나를 보았다. 미국내의 전기차 전문 메이커인 테슬라가 흑자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전기차만 생산하는 메이커로는 처음인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거의 하나의 모델만 생산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캘리포니아주의 특성이 작용했다. 전기차법 (ZEV)에 따라서 할당된 판매량을 채우지 못한 타 메이커에게 할당량을 넘기면서 그 이득을 취한 것으로 나왔고, 더구나 주 정부에서 대당 차량가격의 절반에 가까운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고  미국적인 특성과도 관계가 있다.

가정마다 대부분 차고가 있고, 그 차고에 전원을 연결해서 충전이 가능하다는 점과 캘리포니아의 IT 배경때문이라고 보여질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라는 측면에서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현재 차량의 차세대 동력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앞서와 같은 전기차, 하나는 바로 수소연료전지차이다. 하이브리드는 사실상 전기차와 디젤/가솔린 엔진의 중간로 완전한 하나의 동력체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과도기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사진은 테슬라모터스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하이브리드를 내가 처음 알게된 것으 2005년 미국 출장에서였다. 현지인과의 대화에서 혼다의 시빅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장 많이 팔리는 준중형이며 이 모델이 하이브리드로도 나와서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국내에서는 아직도 전기차에 대한 이야기는 매스컴을 통해서 조금씩 나오고는 있었지만 디젤이나 가솔린이 아닌 다른 엔진으로 실제로 양산되어서 운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던 시점이었다.


하이브리드에 대해서 그때 물어보니 저속에서는 전기모터로 가고 고속에서는 가솔린을 쓴다는 것이다. 가솔린 엔진 구동시 발전기를 돌려서 다시 전지에 저장하고 이를 다시 저속 운행시에 써서 차량의 항속거리를 늘린다는 것이다. 즉, 이 하이브리드는 완전한 전기차로 가기전의 중간 모델인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최근에 잡지 한권을 읽게 되었다. 그 잡지에는 두 개의 차량 벤더가 집중하는 차량 형태에 대해서 기사가 실렸다. 하나는 BMW이고, 하나는 현대차이다. BMW는 전기차 이야기,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 차량이야기다.

이 기사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차량 메이커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차량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차량을 구동하기 위한 인프라에 대한 비중은 작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소차를 만들고 그 차가 실제로 돌아다니려면 수소 연료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만 한다. 차량이 상업적으로 완전한 성공을 거둔데에는 연료의 공급(주유소)이 원활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것은 니콜라스 카가 쓴 빅 스위치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새뮤얼 인설의 유틸리티 공급이 절대적이라고 보여진다.


전기가 발명되고 공장들은 전기를 이용해서 설비들을 돌려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전기를 구입하고 각자의 공장에서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초기의 이 발전기들은 엄청나게 컸고 구입비용도 비쌌다. 당연히 투자비용이 증가한다.


그런데, 이걸 한군데서 발전하고 공급한다면? 32살의 GE 부사장은 그걸 안 것이다. 그리고 독립해서 시내에 운행하는 전차에 전기를 공급하고 시내의 가스등을 전기등으로 교체하도록 하고 전기를 공급했다. 전구를 만들면 그 전구를 써야 하는 데,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하는 부분에서 인설은 신경을 쓴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한 때 인설의 회사는 미국 전체의 10%가량에 전기를 공급하게 된다.  - 물론 후에 인설은 과도한 확장으로 대공황기에 파산으로 도망다니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차량과 그 연료 공급 인프라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전기차를 더 빨리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수소가 생산비용이 더 싸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지만 당장 시장에서 더 빨리 안착하는 것은 전기차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에는 역설적으로 수소차가 가지는 약점들이 전기차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4월호 포춘지에 실렸던 기사에서 언급된 수소차의 약점이 전기차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첫째, 기존의 전기 인프라를 활용해서 어디서든 공급할 수 있도록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서 수소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소차의 항속거리가 전기차보다 더 길다고 하는 점도 이 부분에서 충분히 상쇄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며 배터리 전지 산업은 그 동안에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현재 테슬라 모터스의 모델 S의 경우 최대 완충하고 265마일까지 가능한 것으로 나와 있다.


두번째, 연료의 저장 기술도 문제가 된다. 수소는 일반적으로 폭발 위험이 존재한다. 이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기차의 배터리도 충돌에서 폭발위험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째, 시장성이다. 가격적인 부분에서 수소는 현재 시점에서 1억대, 전기차는 5천대이다. - 테슬라의 일반 전기차모델은 7만불 내외로 판매가 된다. 앞서 설명한 2가지 경우와 연결해서 보면 이 부분에서 더 메리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네째, 환경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전기를 써야만 살 수 있는 환경에 있다. 가장 가까이에 그 전기를 써야만 하는 제품들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노트북, 서버, TV 등등이 그것이다.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 방법에서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에서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므로 꼭 수소차만이 그러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기를 친환경적으로 획득하는 방법은 언젠가는 반드시 나올 것이며 그러기에 수소차만이 친환경적이라고 말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전기차의 약점도 있다. 충전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급속충전모드도 있지만 시간이 걸리므로  배터리를 통째로 교체하는 방법도 나왔던 것이다. - 앞서의 기사에서 이스라엘의 벤처는 이 비지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다가 좌초했다.


일단 부품업체들은 시장의 재편을 잘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전통적인 내장 인테리어 회사는 괜찮을 수도 있지만 차량의 동력계통과 관련된 업체는 예의주시해야만 한다. 내가 들었던 간단한 타산업의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2009년말에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통신사에서 출시했다. 그 이후 국내 출시되는 거의 모든 모바일폰은 스마트폰으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들은 풀터치스크린을 다 사용했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부분이 무엇이냐면 기존의 모바일폰에 들어가던 키패드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럼 이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산했다고 한다. 불과 2년도 채 안되는 시점에 말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전기차로 시장이 변해가면 어떻게 될까? 일단 배기구가 필요없다. 그러면 그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반드시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그것이 우리가 시장을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끝으로 앞에도 언급한 현재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전기차로 알려진  테슬라 모터스의 전기차를 보면 그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소개 동영상은 테슬라 모터스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하다. http://www.teslamotors.com/models/walkthrough


Introducing Model S from Tesla Motors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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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RA를 만든 Atlassian에서 GIT 클라이언트인 소스트리를 기존에는 맥용만 있던 것을 윈도우즈 버전을 최근에 발표했습니다. 저도 아직 GIT는 잘 모르지만 소스트리 받아서 잠깐 써본 결과 인터페이스 등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맥용 버전만 있어서 아쉬웠는데.. 윈도우즈 버전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GITHUB 연결되구요, BitBucket  연결됩니다.


윗 화면을 알겠지만 상당히 좋은 인터페이스입니다. GIT로 개발하시는 분들은 이거 한번 써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ourcetreeap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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