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네 번째 영화가 된다. 내 기억으로 첫번째로 본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그 영화에서는 뒤바뀐 자식을 보고 키운정으로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 감정의 기복이 커다랗게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그 사실들을 직시하게 만들어서 기존 다른 영화에서 볼 때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감독이라고 생각을 했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도 신파로 갈 뻔한 이야기들을 역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어서 이 영화역시 그런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영화를 봤다. 


줄거리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한명이 잡힌다. 그리고 살인 사건을 자백한다. 그런데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자기는 그냥 밖에서 살기보다는 교도소에서 편하게 살기 위하여 검사/변호사의 강요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얽힌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 이 와중에 홋카이도의 눈풍경을 역시나 좋았다. 


기존 히로카즈 영화보다는 당연하게도 감정의 폭이 큰 영화라는 생각이다. 기존 영화에서는 담담하게 일상을 이야기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보다는 진폭이 훨씬 큰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일단 소재 자체가 폭이 큰 이야기이고 제목에서도 알겠지만 살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이니 당연한 것인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게 세번째 살인인지 아니면 3개의 살인인지 혼동이 된다. 


도입부에 있는 자백한 살인자의 첫번째 살인, 그리고 그 살인자의 두번째 살인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데, 첫번째 홋카이도에서 있었던 살인에 대해서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이게 과연 진짜 그 사람이 살인을 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두번째 살인이야기도 정말 이 사람이 살인을 했을 까하는 의문은 달리게 된다. 그리고 진짜 살인자는 밖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게 된다. 약간의 혼동과 의심들이 열린 결말로 나오게 된다. 

물론 실제 영화속 결말은 완전히 오픈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지 누가 진짜 살인자일까 의심하는 생각은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2개의 살인과 감독이 정한 세번째 살인과의 연관성이다. 세번째 살인이라는 의미가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관객은 누가 살인자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만들었는 데 실제로 의도한 바는 세번째 살인은 인간이 과연 다른 인간을 심판하고 재단할 수 있는 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독이 그 부분을 세번째 살인으로 정하고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으로보이는 데, 실제로는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살인자로 상정되고 예상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만 결국은 남아서 세번째 살인에 대한 의도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두 개의 살인과 세번째 살인이 같이 밸런스를 맞추어서 이야기를 해야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되지 못하고 두번째 살인에 대부분의 것이 몰입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다. 


그렇게 몰입된 결과로 관객들은 이렇게 이야기들 하면서 나오게 되었다. 

" 누가 죽인거야? 누가 죽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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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활동했던 밴드였다. 이 밴드의 노래도 유명하지만 보컬과 기타/작곡을 맡고 있던 갤러거 형제로도 너무 유명하다. 실제로도 이 두 멤버가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다큐는 상영하는 극장이 소수이지만 록음악을 좋아하거나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길 원한다. 근래에 들어서 이 밴드만큼 임팩트가 있고 악동짓많이하던 밴드가 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이 밴드의 공연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2009년 인도 출장중에 이 밴드가 해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아주 오랜후에 국내 록 페스티벌에서 리암의 비디아이의 공연을 본적은 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이 밴드는 록 음악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밴드임에는 틀림없다. 이 밴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밴드의 Don't Look back in Anger 는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걸로도 이 밴드는 성공한 밴드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나마 이 다큐가 나와서 다시 둘이 합쳐지고 오아시스가 합쳐질 가능성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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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날 집에서 조용히 IPTV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에도 좀 그렇고 해서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약간 지난 영화를 이렇게 보게 되니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좋은 면이 있다. 


일단 이 영화는 약간은 괴기스럽다. 이야기의 주제 자체가 괴기스럽다는 말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 솔로된 사람은 호텔(?)로 가서 솔로인 사람들과 45일 정도 지내면서 그 속에 같이 살 이성을 만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이 상황에서 개가 된 형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오는 그는 그냥 혼자 살기를 원해서 숲속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 커플이 되는 사람들은 보면 상대방에 나를 맞추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동물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인간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덕분이다 


그 덕분에 위선/위악을 다들 행한다. 사실 숲속으로 도망친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그안에서 커플로 살려는 사람들을 별종 혹은 처리의 대상으로 생각을 한다. 따라서, 내 생각엔 양쪽 다 상대방을 용인하기 보다는 받아들이지 못할 대상 혹은 거부의 대상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확하게 인식이 된 상태로 보인다. 

숲속에  도망쳐서 지내는 사람들끼리중에서 다시 이성에 호감을 느껴서 커플이 되고 이들이 결국엔 숲속에서 도망쳐서 도시로 가서 살려고 한다. 

그런데 도시의 인간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같이 살아가려는 상대방에 맞도록 핸디캡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도시 속의 삶에서의 기준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가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사회에서 거부를 당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욕망하고  그것을 닮아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하나의 개체로 존중받기 보다는 난 너와 같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살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와 같고 난 다르지 않으니 날 받아달라고 말이다. 


유전이론에서는 하나의 작은 돌연변이가 유전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이 자연에 적합하게 만들고 좀 더 큰 변화를 이끌어 내어서 진화를 하도록 만들게 만든다고 하였다. 작은 돌연변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발전하고 진화하고 나아지고 있는 존재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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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다음 영화]

저격수는 같은 편을 보호하고 적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는다. 기본적으로는 숨어서 공격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죽음을 확인하게 된다. 저격수는 죽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는 거 같다. 대상을 선정하고 그 대상에 죽음을 안겨야 한다. 

일반적인 군인들은 일일이 죽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 

무차별적으로 죽음을 안겨주는 작업은 그 대상에 대한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저격수에게는 죽음의 대상이 반드시 적이라는 것이 상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위로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느낄수 있는 영화이긴 한데.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좀 아쉬운 점은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균형 즉, 개인과 전쟁이라는 것, 상업적이라는 것과 대중적이라는 것의 균형...약간은 과도하게 엇나가는 그런 맛이 좀 없다. 보고나면 약간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랜토리노도 그렇고..


그게 약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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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Daum 영화]



어제 밤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아주 오래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슴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은 주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고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러 왔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상당수 왔고 20대 30대 등등 다른 영화를 보러 갔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들어와서 이 영화를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네에 있는 영화관 하나를 이렇게 다양성 혹은 인디 계열의 영화를 계속 상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다큐인데 두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이 아주 오랜동안 서로 마주보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긴 기간동안 삶을 함께 해온 이야기 말이다. 이 다큐는 그 특성상 자극적인 장면이나 이야기가 없다. 이 두 분은 그냥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살아온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70년을 넘게 같이 살았어도 대부분을 서로 존대말믈 쓰고 서로에게 장난을 친다.

과연 이렇게 삶의 끝자리까지 가서 살아갈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아끼어도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희석시켜서 공중으로 날려보내는 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자극적인 이야기와 환경들에 대해서 집착한다. 마치 깊은 갈증과도 같다. 지금은 한모금 마시면 당장의 갈증이 해결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갈증은 다시금 더 깊어져서 더 많은 물을 마시고 싶어진다.


삶은 어쩌면 그 갈증을 적당히 느끼고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리고 상대방을 보면서 그것을 채워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몇몇 장면이 있는데, 자식을 열둘을 낳아서 여섯을 어렸을 때 떠나보내고 자신이 죽기전에 그들에게 줄 내복을 미리 장만하는 장면과 먼저 떠나보낼 배우자의 옷을 태우는 장면, 먼저 가서 기다리면 자신도 갈거라는 그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에 대해서는 정말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밀려들었다.


많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우리 각자의 삶이 하나의 영화이고 드라마같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어야 하고 멋지게 나올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는 서로 얽힌 이 삶이라는 영화에서 주연일수도 조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삶과 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얽히어서 인연이 되고 스스로에게 남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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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상처받은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다소 폭력적인 아이와 그를 돌보아야 하는 엄마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밀어낸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 밀어냄이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버림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쩔수없슴과 세상에 대한 버티기로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삶이라면 어이할 것인가? 먼 미래에도 세상은 그렇게 달라져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약하고 사회악으로 치부된 인간들은 세상에서 점점 더 격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나왔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른바 사회적 예방이라는 측면말이다.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보내야만 하는 그런일도 생긴다. 그런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 


갑자기 든 생각은 그냥 각자의 삶을 이제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음악들은 다양하게 정말 잘 나오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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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다음 영화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더 헌트 (2013)

The Hunt 
8.9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센, 수세 볼드, 아니카 베데르코프, 라세 포겔스트룀
정보
드라마 | 덴마크 | 115 분 | 2013-01-24
다운로드



영화를 본 지가 오래전 인 듯 한 느낌이고 그냥 어제 밤에 드러누워서 IPTV로 결제하고 본 영화다. 사실은 영화관에서 가서 볼려고 마음 먹었던 영화인데 이제서야 보게 된 셈이다. 배우인 매즈 미켈슨은 영어로 최근에 대형영화들(007/삼총사/미드 한니발 등등)에서도 볼 수 있다. 영어로 연기할 때는 이 배우의 발성은 저음에 왠지 차가운 느낌을 전해주고 있는 데 반하여 덴마크언어로 연기할 때는 그러한 느낌은 잘 없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한명의 별거중인 유치원 남성 교사가 친구의 어린 딸이자 유치원생인 애에게 잘 대해주었슴에도 그 아이의 순간적인 거짓말로 사회에서 거의 매장당하는 이야기다. 영문 포스터에서 보다시피 거짓은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는 말이 이 이야기를 아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것이 악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명의 어린이가 저지른 위악이 한명의 인간과 그 주변인들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행하지 않았고 진실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도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서 그 앙금이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 누군가는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사회에 대해서 커다란 분노를 가지게 만들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은 아주 보이지도 않고 확인도 되지 않는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가? 진실은 거짓과 달리 쉽게 퍼져나가지 않는 것인가? 진실은 어쩌면 영원히 묻혀버리는 것인가?



사족

이 감독 영화는 처음이었던 듯한데, 의외로 편안한 화면화 담담하게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과잉되지 않고 적절하게 절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 또한 그에 적절하게 연기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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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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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는 다음 영화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아이맥스로 본 첫번째 영화다. 영화비도 비싸긴 하던데 영화 자체와 아이맥스라는 특성이 합쳐져서 잘 어울려진 것 같아서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도 아이맥스는 비싸긴 비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포스터가 바로 위의 포스터가 아닌가 싶다.  허블 망원경(인공위성)을 수리하러 올라간 우주 왕복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다. 


배우로만 보면 원톱으로 산드라 블록이 나오고 초반에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 우주라는 공간이 역설적으로 영화적으로 보면 소재가 제한된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다. 이 말은 무엇이냐면 미지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공간은 열린 공간이지만 그 배경들이 같은 화면들을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즉,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과 함께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아주 우스운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배우가 이 부분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약간의 아쉬움같은 것이 남는다. 그것은 왠지 우주라는 공간적 특성이 배우를 일정 부분 삼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경(우주)이 온통 검은 색이라서 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배경에 좀 더 몰입된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공간에 몰입이 좀 더 된 느낌이었다. - 이게 아이맥스 탓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3D를 좋아하지 않는다. 안경을 쓰고 보는 데다 테크놀러지에 영화의 이야기가 먹혀버린 느낌이 들어서 일 것이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특정한 적대적인 존재도 없고 공간자체가 위협이 된다. 그런데, 이 공간이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기사가 기억이 난다. 우주에서 쓰레기들이 넘쳐나서 이를 피해서 우주 공간에 위성이나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도 큰일이라는 것이다. 이미 지구 궤도는 포화상태로 치달아 있다는 것이다. 이 포화상태와 우주쓰레기를 회피하기 위함과 천체 관측의 원활함을 위해서 허블망원경을 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허블은 90년도에 궤도에 올려진 이후로 수차레 업그레이드/수리등을 거쳐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이야기는 우주왕복선이 허블을 수리하러 올라가서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과 적대적인 존재가 없이 단지 이야기의 힘으로 전체를 끌어가고 있는 데, 미지의 공간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 등등이 뒤섞여서 인간의 삶에 대한 욕구가 잘 드러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사실 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다른 리뷰에서도 나왔듯이 러시아 위성이 미사일에 맞는 장면과 같은 것을 넣어서 보다 볼거리를 넣어서 자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영화다 보니 과학적인 오류가 당연히 있을 것이지만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는 다른 분들에게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영화는 미지의 것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일부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러가신다면 그 전에 유투브에서 우주정거장 영상(ISS;International Space Staion)을 한번 보시고 가시면 더 좋을 거 같다. 







PS. 아참..어쩌면 허블 망원경은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말처럼 우주에 최대한 근접하여 찍어서 그것을 잘 표현하려는 욕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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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나는 괜찮았다.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유머코드도 좀 있고, 그가 왜 죽을려고 하는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바이올린 소리가 별로라서라기 보다는 그 놈의 사랑이 문제였던 것이다.


짧게 쓰고 싶은데, 이건 그냥 사랑이야기고 그것때문에 죽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다. 그것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남자의 이야기다. 


종반에 가서 느낀 것인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엇갈림과 그리움이 교차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그 불완전한 것이라니 말이다. 이토록 불완전한 것이 왜 세상이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힐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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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윈터바텀의 영화중에서 무엇을 보았나 하고 찾아보니 관타나모로 가는 길 하나를 보았다. 그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에 비해서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인 이안, 아내 카렌 그리고 네 아이들, 이안은 마약 밀수로 감옥에 갇혀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카렌이 애들을 새벽에 깨워서 면회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생활에 찌든 카렌의 이야기도 나온다. 좀 더 지쳐가고 힘든 일상들이 이 영화에서 묻어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는 이런 단조로움을 거의 반복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 같은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보면서 중반쯤 지났을 때, 생각했다. 아 제목하고는 정말 잘 매칭이 되는 영화구나 에브리데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판 포스터의 그 문구에는 그다지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랑을 지킨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한국적인 사고로 보건데, 4명의 자녀를 두고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낮에는 마트에서 일하고, 밤엔 펍에서 일하는 주부의 삶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생활인 것이다. 그걸 사랑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좀 무리가 따르는 것이 아닐까? 꼭 사랑이라고 이야길 해야 하나? 난 그렇게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별다른 사건도 없고 제목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충격적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좀 안하고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막을 끝가지 보면 네 아이들이 같은 성을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들이 실제 형제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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